40대 주부 김모 씨는 4년 전 6억5000만 원에 샀던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20년 된 낡은 아파트를 올해 3월에 6억 원에 팔았다. 5000만 원가량 손해를 봤지만 부동산가격이 어느 정도 회복된 요즘이 아니면 낡은 아파트를 팔 기회가 별로 없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예전부터 새 아파트에 살아보는 게 꿈이었다”며 “조금 손해를 보긴 했지만 6억 원까지 다시 오른 게 다행이다 싶어 서둘러 팔고 인근 판교에 새 아파트를 샀다”고 말했다.
‘비수기가 사라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올해 주택거래가 활발해지자 집주인들이 서둘러 집을 내놓고 있다. 헌 집을 팔고 새집으로 갈아타거나 자산가치가 떨어지는 집을 처분하는 대신 역세권 등에 위치해 향후 집값 상승 가능성이 높은 주택을 구매하려는 것이다. 초저금리 시대에 큰 집을 팔아 작은 집으로 옮긴 뒤 남은 자금을 수익형 부동산에 투자하는 은퇴층도 늘고 있다. ○ 새 아파트 선호, 집값 하락 우려에 “집 팔자”
1일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의 주거이동 유형 분석에 따르면 2014년 전체 이사 가구 중 자가에서 자가로 이사한 비율은 25.5%로 전세에서 자가로 이사한 비율(22.5%)보다 높았다. 2012년에는 자가에서 자가로 이사한 비율이 20.8%였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위축됐던 주택 소유자들의 교체 수요가 최근 들어 회복되고 있다”며 “무주택자가 집을 사는 것보다 회복 속도가 빠르다”고 말했다. 집주인들이 주택경기가 좋아지자 부지런히 집을 내놓고 새집으로 갈아타고 있는 것이다.
집주인들은 왜 집을 내놓고 있을까. 동아일보가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써브’에 의뢰해 지난달 11일부터 약 5일간 전국 부동산써브 회원 공인중개사 61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최근 6개월간 주택 매도자들이 주택을 팔려는 가장 주된 이유’에 대한 답으로 이들은 △새 아파트 등 시설이 좋은 주택으로 이동(46.9%) △향후 주택가격 하락 우려(28.5%) △다운사이징을 통한 현금 확보(9.6%)를 꼽았다.
김규정 NH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요즘 다주택자들은 최근 1년간 주택가격이 회복세를 이어왔으나 회복세가 오래가긴 힘들다고 판단해 투자가치가 낮은 주택을 팔려고 하고 있다”고 전했다. 부동산써브의 설문조사에서 공인중개사의 56.0%가 집을 팔기 좋은 시기로 올해 하반기(7∼12월)를 꼽기도 했다.
30, 40대가 새 아파트를 선호하는 현상이 강해진 것도 한 요인이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30, 40대 소비자들은 장기적으로 집값이 상승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기존의 낡은 집을 판 뒤 살기 좋은 새집을 찾는 경향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 은퇴층은 큰 집 팔아 “부동산 월급 타자”
50, 60대는 집의 규모를 줄이기 위해 집을 내놓고 있다. 주택 크기를 줄인 뒤 남는 돈으로 임대수입을 올릴 부동산을 사들이기 위해서다. 금리가 낮으니 정기예금으로 이자수입을 노리기보다 부동산으로 ‘임대료 월급’을 타겠다는 얘기다. 60대 주부 정모 씨는 최근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한 아파트를 11억 원에 팔고 경기 오산시의 3억 원대 아파트로 옮겼다. 남는 돈으로는 송파구 문정동의 소형 아파트를 사 월세를 놓고 있다. 정 씨는 “강남에서 오래 살다가 외곽으로 옮겨서 불편하지만 남편이 은퇴한 상태에서 월세 100만 원이 들어오니 좋다”고 말했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기준금리가 떨어진 뒤 집을 팔아 마련한 자금의 일부를 수익형 부동산에 투자하는 베이비부머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신규 매매에 나서는 무주택자보다 살던 집을 교체하려는 집주인들이 향후 부동산시장의 침체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세기 한국감정원 주택통계부장은 “지금은 전세에서 매매로 전환되는 수요의 증가가 두드러지지만 앞으로 경기가 안 좋아진다면 자금여력이 있는 주택 소유자들이 주택거래를 이끌고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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