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국제의결권자문기구(ISS)’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 합병에 대해 ‘반대’ 의견을 냈다. 삼성물산 주주의 3분의 1에 이르는 외국인 투자가 가운데 상당수가 이 의견을 따를 경우 삼성그룹으로서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와의 표 대결에서 부담을 안게 될 전망이다. ● ISS 반대로 삼성 비상
ISS는 3일 자사 홈페이지에 게재한 ‘의견서’에서 “삼성물산 주주들은 제일모직과의 합병에 반대하는 것을 권고한다”라고 밝혔다. ISS는 “삼성물산 주주들은 불이익을 받고 있다”며 “(합병을 통한) 잠재적 시너지가 주식가치 저평가를 보상하지는 않는다”고 판단 이유를 설명했다. 합병 비율 산정 및 절차의 위법성이 없다고 해도 삼성물산 주주들의 자산가치가 평가 절하됐다면 합병이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앞서 세계 2위 의결권 자문사인 글라스루이스도 ‘합병 반대’ 의견을 밝혔다.
17일 삼성물산 주총에서 합병안이 통과하려면 참석주주의 3분의 2, 총 발행주식의 3분의 1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의결권을 가진 주식수의 70% 정도가 주총에 참석한다고 가정한다면 47%의 찬성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반대로 엘리엇이 합병안을 무산시키려면 23%의 반대표가 필요해 본인 지분 7.12% 외에 16%의 동조세력만 끌어들이면 된다.
이번 주총에서 ‘캐스팅 보트’를 쥘 것으로 보이는 국민연금은 의결권이 있는 주식을 11.21%까지 늘렸다고 이날 공시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지분 확대는 시장상황에 따른 자연스런 투자활동일 뿐 특별한 정책판단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며 “조만간 기금운용본부 투자위원회를 열어 이번 사안을 전문위원회에 올릴 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물산은 “ISS 보고서가 경영환경이나 합병의 당위성과 기대효과, 그리고 해외 헤지펀드의 근본적인 의도 등 중요한 사안에 대해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아쉽고 안타깝다”고 밝혔다.
● 이사진 교체까지 시사한 엘리엇
엘리엇은 이날 자신들의 주장대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 합병이 무산될 경우 삼성물산 이사진 교체를 시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합병 실패 이후 구체적인 행동계획까지 공개함으로써 반대표를 더욱 적극적으로 결집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엘리엇은 또 ‘삼성물산 주주총회 소집통보 및 결의금지’ 가처분신청을 기각한 법원 결정에 불복해 항고했다.
엘리엇은 보도자료를 통해 “모든 주주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임시주주총회 소집의 방법으로라도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영국계 헤지펀드 헤르메스 리베스트먼트가 삼성정밀화학 지분 5.02%를 확보했다고 공시해 배경이 주목된다. 이 펀드는 2004년 삼성물산 지분을 확보한 뒤 경영진과 갈등을 빚으며 주가를 띄운 뒤 수백억 원대 시세차익만 남기고 떠난 바 있다. 헤르메스는 지난해 말까지 삼성정밀화학 지분 2.90%를 보유했다. 올 들어 지난달 26일까지 2.12% 추가 매입했다. 헤르메스의 법률 대리인이 엘리엇의 소송 대리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 넥서스라는 점에서 외국계 헤지펀드의 공격이 삼성그룹의 다른 계열사로 확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삼성정밀화학 측은 “헤르메스의 지분 보유 목적은 단순 투자여서 경영 분쟁 가능성은 없다”며 “또 삼성SDI, 삼성전자, 삼성물산, 호텔신라 등 특수관계인 지분이 31% 이상이어서 경영권 방어에도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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