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3월 미국 항공기 제조업체 보잉의 이사회는 당시 최고경영자(CEO)였던 해리 스톤사이퍼를 퇴진시켰다. 위기에 빠진 회사를 구원할 인물로 영입한 그를 15개월 만에 물러나게 한 것은 취임할 때 이사회와 약속한 윤리강령을 위반했기 때문이었다. 이사회가 CEO와 구체적인 경영약정(Terms of Reference)을 맺고 그 이행 여부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며 필요하면 해임까지 가능하게 한 보잉사의 지배구조는 최근 국내에서 추진 중인 금융개혁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정부는 작년 2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한 이후 4대 부문 구조개혁의 일환으로 금융개혁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금융개혁은 무엇보다 금융산업 내 보신주의 타파를 통해 금융의 실물경제 지원 기능을 회복시키기 위함이다. 새로운 수익원 개발을 통해 금융산업 위축을 방지하는 것 또한 주요 목표의 하나로 추진되고 있다.
정부가 금융개혁 성공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사실 금융개혁의 궁극적인 성공 여부는 금융회사 CEO 및 경영진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 여건이 좋을 때에는 금융회사가 과거 방식대로 운영돼도 큰 문제가 없기 때문에 CEO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다. 그러나 최근과 같이 인구고령화, 저성장, 저금리 등으로 영업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CEO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불확실성이 클수록 금융회사가 장기적으로 나갈 방향과 이를 실현할 전략을 제시할 수 있는 리더십의 발휘가 긴요해지기 때문이다.
금융회사의 비전과 전략까지 정책당국이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건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금융산업이 직면해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에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금융개혁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금융회사 CEO들이 금융규제 완화로 보다 넓어진 자율성의 공간에서 차별적인 경영 비전을 제시하고 책임경영을 수행해야 한다. 이런 CEO의 역할이 추가돼야 비로소 금융개혁을 통한 실물경제 지원, 수익성 개선, 창조경제 실현 등의 성과가 가시화될 수 있다.
그런데 CEO가 ‘자율·책임경영’을 하려면 이사회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국내 은행지주회사의 경우 국제 모범규준과 유사한 수준으로 이사회의 역할이 명문화돼 있다. 그룹 경영계획 승인, 경영진 평가 및 보상, 기타 중요한 경영전략 결정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경영계획은 현실에 안주하는 기존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경영진 평가 역시 형식적인 수준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다. 경영전략 또한 구체성이 결여돼 있을 뿐만 아니라 회사 간 차별성도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경영실적이 CEO의 연임 또는 재선임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사회가 CEO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기구로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이사회는 지주회사 CEO 선임 시점부터 CEO와 경영약정을 맺고 그 핵심 내용을 공시하고 이행 여부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다. 경영약정 대비 실적을 공시하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아울러 CEO의 책임성 강화와 동시에 실적을 통해 경영능력이 검증된 CEO의 경우 장기 재임할 수 있는 장치도 사전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자율과 책임이 수반되는 금융회사 내부 지배구조의 정착은 금융개혁 성공의 핵심 요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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