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도심 오피스빌딩들이 ‘외도’에 나서고 있다. 건물주들이 주말에 텅 비는 빌딩에 싱글 남녀를 모아 단체미팅을 주선하는가 하면(왼쪽 사진) 입주가 완료되지 않아 빈 공간이 많은 오피스빌딩을 예술품을 전시하는 대형 전시장으로 활용하기도 한다(오른쪽 사진). GS건설·루이뷔통
지난달 10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청진동의 ‘그랑서울’ 지하 식당가. 보통 수요일 오후라면 직장인들이 점심식사를 마친 뒤 한산한 시간이다. 하지만 이날은 유난히 사람들로 붐볐다. 현대백화점이 ‘이동식 백화점’을 열었기 때문이다. 이 건물 시공사로 이 빌딩을 일반에 널리 알리려는 GS건설과 소비 위축으로 고민하는 현대백화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열린 행사였다. 2월 초 주말에는 이곳에서 남녀 300여 명이 참여한 단체미팅이 열리기도 했다.
김동삼 GS건설 부장은 “이 일대는 평일 오후 2∼4시와 주말에 유동인구가 적어 건물에 입점한 상인들의 불만이 많았다”며 “오피스빌딩을 24시간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주말이나 평일 근무시간 중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12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도심의 오피스빌딩들이 ‘외도’에 나서고 있다. 평범한 사무공간을 다른 용도로 활용해 빌딩에 입점한 상가의 영업을 돕고 있는 것이다. 최근 도심재생사업이 마무리되며 서울 종로구 일대에 오피스빌딩이 대거 들어섰지만 경기침체와 공공기관들의 탈(脫)서울로 공실률이 높아진 데 따른 현상이다.
○ 오피스가 전시장, 단체미팅 공간으로
4월 말 서울 종로구 ‘D타워’ 외벽에는 명품 브랜드 루이뷔통의 대형 로고가 걸렸다. 건물 앞에는 빨간 카펫도 깔렸다. 지난해 10월 신축 공사를 마무리한 대림산업의 오피스빌딩 1, 2층을 루이뷔통이 25일 동안 빌려 루이뷔통의 이미지를 활용한 예술품을 선보이는 전시회를 연 것이다. 입주 초기라 빈 공간이 많은 건물을 활용하려는 대림산업과 도심공간을 활용해 홍보를 하려는 루이뷔통이 전략적으로 손을 잡았다.
이 행사를 기획한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코리아 김성순 상무는 “루이뷔통은 사람이 많은 도심의 대형공간을 빌릴 수 있어 홍보효과를 높일 수 있었고, D타워는 입주 초기에 명품 브랜드가 선택한 공간이라는 이미지를 줘 인지도를 높이는 데 활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경 철거를 시작한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자리에는 책들이 쌓인 이미지를 담은 외벽이 설치됐다. 재건축을 맡은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철거되는 건물이라도 지속적인 관심을 끌 필요가 있어 외벽 디자인에 공을 들였다”고 설명했다.
○ 외곽으로 떠난 기업들로 공실률 상승
도심 오피스빌딩들이 이처럼 다양한 형태의 이벤트까지 동원하며 인지도를 높이려고 노력하는 건 높아진 공실률 때문이라는 게 부동산업계의 분석이다. 최근 종로구 등지에 대형 오피스빌딩이 잇달아 들어서면서 공실률이 높아졌다.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코리아에 따르면 서울 대형 오피스빌딩의 공실률은 올해 2분기(4∼6월)에 13.4%로, 지난해 같은 기간(11.8%)보다 상승했다. 오피스업계는 올해 공실률이 정점을 찍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공공기관들이 지방이전을 마무리했고 정보기술(IT) 기업들도 경기 성남시 판교 창조경제밸리 등지로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정성진 어반에셋매니지먼트 사장은 “경기침체로 신규 법인 설립은 활발하지 않은 가운데 기존 회사들도 경비 절감 차원에서 사무공간을 확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형 오피스들 사이에 임차인 끌어오기 경쟁도 치열하다. 한 부동산컨설팅업체 관계자는 “임대관리 업자들끼리 과감한 임대료 할인, 인테리어 비용 지원을 내세워 다른 빌딩에 입주한 임차인을 끌어오려는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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