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2000년대 초만 해도 광고 일을 하기 위해선 명문대 진학이 필수였습니다. 여기에 외국어 실력, 공모전 입상, 동아리 활동이나 유학 경험 같은 ‘스펙’이 더해져야 광고 회사 면접장에 들어갈 수 있었죠.
그 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던 걸로 보입니다. 기자가 만난 한 웹툰 작가는 재야의 고수로 인정받아 국내 유수 광고회사에 입성했었으나, 스카이(SKY)대 출신 위주로 돌아가는 판에서 섞이지 못해 짐을 싸서 나와야 했던 슬픈 경험을 얘기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틀이 조금씩 깨지고 있습니다. ‘고탱’이나 ‘선바’처럼 페이스북, 유튜브에서 활동하면서 제도권에 들어가지 않고도 남다른 감각으로 재미난 광고를 만드는 ‘업자’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광고 제작자가 되기 위해 높은 광고회사의 벽을 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1인 광고 제작자의 등장은 그런 점에서 혁신이죠.
그래도 UHD(Ultra-HD) 화질 가상현실(VR) 광고나 360도 광고, PC, 태블릿, 휴대전화 등 디바이스별로 최적화된 첨단 광고는 대형 광고회사만 만들 수 있는 영역으로 여겨졌는데요, 이 공식도 무너지고 있습니다. 바로 지난해 11월 서울 잠실 광고문화회관 5층에 문을 연 첨단광고 전문제작 시설 ‘창작공간 AD’ 때문입니다.
창작공간 AD는 고가의 광고제작 장비를 구비할 수 없는 1인 광고 제작자나 영세한 광고제작사들이 다양한 광고기법과 기술을 활용해 창의적인 광고를 원스톱으로 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사장 곽성문)가 9억 원(국비 7.5억원, 코바코 1.5억원)을 들여서 개원했습니다. 중요한 점은 고가의 장비를 무료로 쓸 수 있다는 겁니다.
① 누가 이용할 수 있나요?
시설 이용 대상은 △광고 아이디어는 있지만 이를 어떻게 구현해야 할지 모르거나 △기술은 있지만 이를 구현하고 제작할 인프라가 부족한 사람들 △관련 전문가와 기술을 논의하고 싶지만 누구와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창작공간AD 관계자에 따르면 이 곳은 신박한 아이디어만 있어도 ‘스마트광고’ 제작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인큐베이터 시설입니다. 스마트광고는 각종 스마트 기기에서 작동하는 스마트광고 앱, 고품질 디지털 영상(UHD) 광고, 특수 효과가 가미된 3D, VR, 360도 광고 등 양방향 첨단 광고를 말합니다.
다만, ‘이게 내 아이디어인데, 댁들이 광고로 전부 만들어 주시오’라는 부탁은 들어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코바코 오상훈 차장은 “어떤 분이 ‘100만원 줄 테니 우리 회사에서 예전에 찍은 영상을 이걸 20초 분량 광고로 편집해 달라’고 해서 거절했다. 창작공간AD는 광고를 제작하는 분들이 자신의 작품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시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코바코 광고교육원에 있는 스마트광고 PD스쿨 과정 수강생들은 이 곳에서 제작 실습을 할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창작공간AD측은 “목표는 구글스튜디오”라고 말합니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최첨단 영상 제작 스튜디오가 되는 것이죠.
② 어떤 시설을 쓸 수 있는지?
가상현실(VR) 헤드셋을 쓰면 응원 열기로 달궈진 축구장 객석이 됩니다. 빨간 유니폼을 입은 치어리더들이 팔 다리를 쭉쭉 뻗으며 춤을 추고, 홈 팬들은 목이 터져라 승리를 외칩니다. 창작 공간 AD에서 작업한 축구장 VR 광고입니다.
이처럼 VR이 가능한 것은 고선명 카메라 덕분인데요. 방송 및 광고 시장의 고선명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창작공간AD는 국내 최초로 UHD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시설을 구비했습니다. 현재 국내에서는 이 곳과 경기콘텐츠진흥원이 UHD영상 편집장비실을 구축해 운영 중입니다.
또 4K 카메라인 Cannon EOS 1DC와 4K 편집이 가능한 Mac Pro 기반의 NLE 시스템 및 UHD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였으며, 2D/3D 제작용 S/W(3D Max, Maya, CS7 등)와 랜더링 및 레이드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어 4K 촬영 및 편집을 완벽하게 지원합니다.
최신 스마트디바이스에서도 4K를 촬영할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제작된 콘텐츠를 다양한 스마트미디어 디바이스에서 테스트 할 수 있도록 디바이스들을 비치한 매체적합성 테스트실도 갖춰져 있습니다.
광고문화회관 5층 사무실에 가보면 53평 공간이 쓸모 있게 배분돼 있습니다. 장비시스템 운영을 맡고 있는 손석주 리딩컨버젼스 대표는 “이 곳에서는 모든 걸 원스톱으로 만들 수 있다. 아이디어를 제작으로 구현할 수 있고, 기기별 테스트하는 등 광고 촬영만 해오면 나머지는 이 안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 수 있다”고 귀띔했습니다.
③ 어떻게 이용 신청하나요?
창작공간AD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시설 이용률은 30%대에 머물렀지만, 입소문이 서서히 나면서 6월 기준 70%대까지 오른 상태입니다. 116개 업체가 회원으로 등록돼 방송광고는 물론 지면광고, 웹, 모바일 등 다양한 형태의 광고로 제작되고 있습니다.
시설 이용을 위해서는 창작공간AD 홈페이지(www.smartad.or.kr) 회원가입 후 필요한 작업에 따라 시설을 예약하면 됩니다.
창작공간AD 홍보 자료에서는 “여러분을 위해 언제나 열려 있다”고 하지만, 운영 직원들 저녁 퇴근 시간에는 문을 닫습니다. 하지만 야간 개장 수요가 많아지면, 당번을 서서라도 열 계획이라고 합니다.
④ 시설 운영은 언제까지?
언제까지 시설이 구동될지 그 답은 정부에 달려있습니다. 워낙 고 사양 시설이라서 유지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창작공간 AD측은 “앞으로 이용자 만족도 조사 및 전문가 자문회의를 통해 사용자 지향적인 공익시설로서 창작공간AD 발전방안을 수립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광고시장과 기술흐름에 대응하는 인프라를 구축, 지속적인 시설확대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정부에서 지원금이 계속 나와야 가능한 일이겠죠.
지자체와 중앙정부가 함께 지은 대규모 영상센터에 지속적인 장비 투자가 안 돼 시설이 노후화되고 영상 전문가들의 발길이 끊긴 사례가 빈번하게 있습니다. 이렇게 아무도 안 찾는 애물단지가 되지 않으려면 적어도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갱신이나, 테스트 기기 제품 업데이트가 돼야 하는 데 이게 다 ‘돈’ 문제죠.
공익사업이니까 태블릿PC나 스마트폰 등 테스트 기기라도 대기업에서 기증하면 좋겠지만, 아직 주는 데는 없다고 합니다. 창작공간AD관계자는 “영상, 장비 전문가들이 고품질 광고 영상을 기증 받은 스마트 기기에 구동해 보고 양질의 테스트 리뷰를 작성해서 줄 수 있는데, 아직 기증하겠다는 곳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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