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평소에 꿈꾸던 진짜 커리어 우먼 같아요. 어떻게 하면 선배님처럼 될 수 있을까요.”
KB국민은행의 주니어 여성 행원들은 정은영 국민은행 서울 강남역종합금융센터 부지점장(48)이 사내 교육을 할 때면 가끔씩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그의 세련된 옷차림과 자신감 넘치는 말투는 여느 은행 창구에서 볼 수 있는 여성 행원들의 모습과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수많은 여성 행원들 가운데 ‘진짜 커리어 우먼’이라는 찬사를 듣는 정 부지점장은 국민은행의 기업금융전담역(RM·Relationship Manager)이다. RM이란 기업고객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고객에게 맞춤 종합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금융 전문가다.
직접 발로 뛰며 신규 기업을 발굴하고 때로는 기업 관계자들과 저녁 회식도 마다하지 말아야 하는 보직의 특성상 RM은 남성 행원들의 영역이었다. 최근 국민은행에서 활약하는 여성 RM이 늘고 있는 추세지만 아직도 극소수다. 전체 행원이 2만여 명인 국민은행에 RM은 총 359명. 이 가운데 여성 RM은 3명에 불과하다. 신한은행 역시 총 309명의 RM 중 여성은 7명뿐이고, 188명의 RM을 보유한 하나은행은 여성 RM이 아예 없다.
최근 각 은행들은 여성 RM을 적극 늘리고 있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겸 국민은행장은 기업금융 부문에 여성 비중을 높일 것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국민은행은 장기적으로 RM 후보군을 전문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여성 신입행원 일부를 대기업 금융점과 종합금융센터 등 120개 RM 점포에 배치하기로 했다. 또 여성 행원들의 기업금융 연수 기회를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국민은행이 여성 RM의 비중을 확대하기로 한 건 여성 행원들의 ‘소프트 파워’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 부지점장과 또 다른 여성 RM인 윤명숙 충무로역지점 부지점장(45)은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친화력’을 자신들의 최고 경쟁력으로 꼽았다. 윤 부지점장은 “요즘에는 기업들도 섬세한 금융관리를 요구한다”며 “여성 특유의 세심함과 배려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나 최고재무책임자(CFO)들의 마음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정 부지점장도 “처음에는 여성이라고 무시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싹싹함으로 다가가면 금세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며 “신뢰를 얻으면 무엇보다 손쉽게 다른 기업을 소개받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정 부지점장은 글로벌 패션 브랜드 MCM을 비롯해 패션, 섬유 업종을 주로 담당하고 있고 지난해에는 코리아나화장품 등에서 기업여신 100억 원을 유치했다.
윤 부지점장은 RM을 ‘기업금융의 꽃’이라고 설명하며 “여성 행원들이 여신업무를 어렵게 생각하고 꺼리는 경향이 있지만 차근차근 준비하면 반드시 꽃을 피울 수 있다”고 말했다. 정 부지점장도 “국민은행의 법인여신 규모는 6월 말 기준 60조1000억 원인데 이 가운데 34조5000억 원(57.4%)을 300여 명의 RM이 담당하고 있다”며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실력 있는 여성 후배들이 맡아 회사를 이끌어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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