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하지 않은, 고유가시대 정책 언제까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6일 03시 00분


알뜰주유소 시장개입 논란
가격차 적어 소비자도 시큰둥… 업계선 “사업성 낮아 수익 악화”
정부도 조합전환 방안 등 검토

“기름값이 묘하다.”

2011년 1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이런 한마디로 시작돼 4년 반 동안 진행돼 온 ‘알뜰주유소’ 사업에 대한 시장과 소비자들의 반응이 사업 개시 초기와 크게 달라졌다. 일반 주유소에 비해 기대만큼 가격이 ‘알뜰’하지 않고, 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시장 질서만 어지럽힌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국제 유가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던 시기에 만든 정책을 저유가 상황에서도 계속 추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 ‘알뜰’하지 않은 ‘알뜰주유소’


15일 한국석유공사와 농협에 따르면 올해로 네 번째인 알뜰주유소 입찰 결과 정유사가 직접 알뜰주유소에 공급하는 1부 시장에서 중부권(서울·경기, 충청, 강원)은 현대오일뱅크가, 남부권(경상·전라)은 GS칼텍스가 유류 공급사로 선정됐다.

자체 유통망이 없어 한국석유공사를 통해 공급하는 2부 시장의 경우 휘발유는 한화토탈 단독 입찰로 유찰됐고 경유는 현대오일뱅크가 가져갔다. 알뜰주유소 사업자로 선정된 업체들은 9월 1일부터 2017년 8월 31일까지 2년간 유류를 납품하게 된다. 유찰된 2부 시장의 휘발유 사업자는 다음 주 재입찰을 진행할 예정이다.

알뜰주유소 사업은 최고 통치권자의 말 한마디에 정부가 시장에 개입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 대통령의 발언 이후 당시 지식경제부는 기름값 잡기에 사활을 걸었다. 최중경 당시 지경부 장관은 “회계사 출신인 내가 직접 원가를 분석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정부는 경쟁을 유도해 일반 주유소보다 휘발유 가격을 L당 100원 싸게 판다는 취지로 알뜰주유소를 만들었다. 석유공사가 정유사에서 휘발유와 경유를 대량으로 공동 구매해 저렴하게 제공하고 각종 부대 서비스 등을 없애 가격을 낮춘다는 계획이었다. 일반 주유소가 알뜰주유소로 전환하는 것을 돕기 위해 1곳에 3000만 원씩 국가 보조로 3년간 200억 원을 지원했다. 2011년 12월 1호점을 시작으로 알뜰주유소는 지난달 말 현재 전체 주유소의 9.3%인 1141개로 늘었다.

도입 초기에는 유가 안정에 기여한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저유가 상황이 지속되면서 반응이 시큰둥해졌다. L당 100원 이상 저렴하게 공급하겠다고 했지만 일반 주유소와의 가격 차도 크지 않다. 석유공사에 따르면 이달 14일 기준 전국 알뜰주유소의 휘발유 가격(보통 휘발유 기준)은 L당 1553.73원으로, 정유사 브랜드 주유소 평균인 1582.55원보다 28.82원 싸다. 정유사 중 상대적으로 저렴한 현대오일뱅크(1567.61원)와 비교하면 격차는 더 줄어든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석유에 붙는 세금 중 교통에너지환경세, 주행세, 교육세 등은 정액으로 고정돼 있기 때문에 저유가 상황에선 원가 절감의 여지가 크지 않다”며 “다만 올해부터 변경된 입찰공고에 따라 최저가 입찰제가 적용되고 계약 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늘어나면서 대량 구매에 따른 가격 절감 효과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 정유업계·주유업계 모두 불만 가득

정유업계도 알뜰주유소 정책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유사들은 사업성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알뜰주유소 사업권을 따내기 위한 출혈 경쟁을 펼치고 있다. 마진은 적지만 국내 시장 점유율을 상당히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유 4사 중 가장 규모가 작은 현대오일뱅크가 이번까지 4차례 연속 1부 중부권에 대한 사업권을 따낸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업계는 2011년 국제 유가가 사상 최고치에 이르렀을 당시 만든 정책이 지속되는 건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정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은 ‘오피넷’을 통해 각 주유소의 판매가격이 실시간으로 공개되고 감시기관(에너지석유시장 감시단 등)마저 운영되고 있는데 알뜰주유소까지 계속 밀어붙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알뜰주유소는 국민의 세금을 들인 가장 반시장적인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도 지난해 보고서를 통해 알뜰주유소를 시장 질서와 공정 경쟁을 해치는 대표적 사업으로 지목했다. 연구원은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것 자체가 장기적으로 시장 질서와 공정 경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정부는 알뜰주유소가 여전히 기름값 인상 억제 효과가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알뜰주유소가 없었다면 현재 보통 휘발유 가격이 L당 1700원에 이를 것”이라며 “알뜰주유소 가격이 일종의 기준 가격이 되면서 정유사들이 기름값을 함부로 올리지 못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도 과도한 시장 개입이라는 비판을 의식해 출구전략을 고민하고 있다. 알뜰주유소에서 석유공사, 농협, 도로공사 등 공공기관이 손을 떼고 공동 구매 조합 등으로 독립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현재 전체 주유소의 9.3% 수준인 알뜰주유소가 내년까지 10% 선으로 늘면 안정기에 들어설 것으로 전망된다”며 “내년을 목표로 자립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재영 redfoot@donga.com·김창덕 기자
#고유가#주유소#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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