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조선업을 필두로 ‘한계기업’들의 통폐합을 비롯한 고강도 구조조정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 현재 금융당국과 채권단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구조조정 과정에 민간 자본을 투입해 부실기업이 많은 업종의 신속한 산업 재편을 유도할 방침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연간 2%대 저성장이 장기화하면서 올 하반기에 부실기업들에 대한 구조조정 이슈가 부각될 것”이라며 “부실이 더 전염되기 전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 기업들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중국 업체들의 추격이 거세지면서 일각에서는 부실 산업군(群)에 대한 정부의 인위적 개입이 앞으로 몇 년 새 대규모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부실기업 통폐합 통한 선제적 구조조정
구조조정의 신호탄은 조선사들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조선사들은 경기 침체에 따른 해운 물동량 감소, 중국 업체들과의 저가 수주 경쟁으로 수익성이 한계 상황에 처해 있다.
정부 관계자는 “채권단 주도하에 자율협약 또는 워크아웃 중인 중소형 조선사끼리 합병을 유도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며 “수출입은행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들이 합병 후 시너지 효과 등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방식의 구조조정 대상으로는 STX조선과 SPP조선, 성동조선 등 서너 곳의 기업이 우선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동안 채권단이 많은 자금을 쏟아 부었지만 경영 상태가 좀처럼 호전되지 않는 기업들이다. 이 중 일부 조선사는 상대적으로 여건이 괜찮은 대형 조선사에 위탁경영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정부는 조선업뿐 아니라 다른 업종도 부실기업 간 통폐합을 통해 구조조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지금처럼 채권은행들이 중심이 돼 한계기업 한두 곳만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는 관련 산업 전체가 붕괴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자금 지원 등을 통해 부실기업 한두 곳만 살려놓으면 다른 기업들과의 형평성에도 맞지 않고 ‘부실의 싹’을 완전히 도려내기도 쉽지 않다”며 “개별 기업보다 업종 전반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대상으로는 조선 해운 건설 등 기존의 부실 업종 외에 전자 철강 같은 주력 업종도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자 업종은 지난해 업계 매출이 전년도에 비해 22조7000억 원(7.3%) 감소했고 철강 업종도 전체 기업 중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조차 내지 못하는 기업이 12.8%에 이를 정도로 업황이 악화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전체 외부감사 대상 기업 중 이런 한계기업의 비중은 2009년 12.8%(2698개)에서 2014년 15.2%(3295개)로 증가했다. 특히 대기업의 한계기업 비중(14.8%)이 중소기업의 비중(15.3%)에 근접하면서 경제의 새로운 뇌관으로 부각되고 있다.
○ 구조조정 촉진 장치 마련
정부는 구조조정을 원활히 할 수 있는 각종 제도적 장치도 마련할 방침이다. 우선 연내에 금융회사와 사모펀드(PEF) 등 민간 자본이 참여하는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를 업종별로 설립할 계획이다. 구조조정전문회사는 부실기업들의 채권을 사들인 뒤 경영을 정상화하고 이를 다시 시장에 매각하는 기능을 한다. 또 업종 내에 부실기업이 여러 곳 있을 경우 이들을 통폐합하는 역할도 담당한다. 정부는 구조조정전문회사의 전문성과 성공 사례가 쌓이면 지금의 채권은행 주도 방식보다 빠르고 효율적인 구조조정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국회에는 기업의 사업 재편을 돕기 위한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원샷법)’ 제정안도 발의돼 있다. 이 법에 따라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면 구조조정에 필요한 규제 완화, 세제 지원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일각에서는 업종별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의 개입이 예상보다 셀 경우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나서서 ‘이건 너희가 갖고, 저건 너희가 갖고’ 식의 일률적 산업 재편을 하면 시장기능이 위축될 수 있다”면서 “시장 스스로 기업 재편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