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자들은 거의 기회만 나면 다른 인문주의자들에게 ‘절도’ 혐의를 씌웠고, 그러면서도 스스로들은 창조적 ‘모방’을 넘어서는 짓은 한적이 없노라고 주장했다. ―지식, 그 탄생과 유통에 대한 모든 지식(피터 버크·현실문화연구·2006년) 》
이 책에 따르면 유럽의 중세 시대에는 글이나 착상의 소유권, 즉 지식은 ‘매매할 수 없는 신의 선물’이라는 관념이 지배하고 있었다.
15세기 인쇄술이 유럽에 보급되고 이로 인해 정보의 유통이 활발해지자 16세기에 비로소 지적재산권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153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스트라스부르(현 프랑스)의 두 인쇄업자는 논문에 삽화를 넣으면서 표절한 목판화를 쓴 일을 놓고 다툼을 벌였다. 표절 혐의를 받은 인쇄업자는 “지식이 확산되면 인류에 이득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지적재산권은 정보가 큰 힘을 지닌 현대사회에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았다. 정보는 비로소 상품이 됐고 이윤이 됐다.
최근 한국 미디어업계에 16세기 독일에서 발생했던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이른바 ‘소매치기 미디어’라고 불리는 큐레이션 미디어가 태동하면서다. 큐레이션 미디어란 전시할 그림을 고르는 미술관의 큐레이터처럼 유용한 정보들을 모아 알기 쉽게 정리해 제공하는 미디어를 뜻한다. 정보 범람의 시대에 원하는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니 이 얼마나 고마운 미디어인가! 문제는 큐레이션 미디어에 저작권이란 ‘매매할 수 없는 신의 선물’이라는 중세시대 관념으로 퇴행했다는 데 있다. 다른 미디어의 정보를 제공하지만 사용권 계약은 이뤄지지 않는다.
미디어업계가 지적재산권의 개념조차 모호했던 16세기 독일로 퇴행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스러운 것은 기분 탓일까. 정보의 가치가 우대받으면서 비로소 지식 축적이 활발히 이뤄졌다는 사실을 정보 제공자가 간과한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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