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동구 옥수동에 사는 40대 워킹맘 김모 씨는 9월 입주 예정인 강남구 대치동의 새 아파트 ‘래미안 대치 청실’(가칭) 아파트를 사기로 얼마 전 마음을 굳혔다. 당초 경제적 부담이 비교적 덜한 전세를 얻어 대치동에 진입할 계획이었지만 전세금이 10억 원을 훌쩍 넘자 아예 매매로 돌아선 것이다.
김 씨는 “아파트 값이 15억 원 정도인데 전세금이 12억∼13억 원까지 올라 대출을 받아 사는 게 낫겠다 싶었다”며 “남들은 왜 굳이 무리하느냐고 하지만 학원들이 잘 갖춰져 있으니 ‘대전’(대치동 전세) 대신 ‘대구’(대치동 구매)를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세난 속에서 저금리 시대가 이어지자 서울 강남의 부동산 거래 패턴이 달라지고 있다. 대표적인 ‘학군 수요 지역’인 대치동의 전세금이 매매가를 바짝 따라잡고, 이 지역에 신축 대단지가 들어서면서 대치동 전세 대신 매입에 나선 ‘대구족’이 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재건축이 예정된 아파트가 늘어 이 지역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도 이런 경향을 부추기고 있다. 이와 함께 대치동과 학원버스로 쉽게 연결되는 반포동에서 월세를 사는 ‘반월’(반포동 월세)도 새로운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다.
○ 전세난 심해도 학군 못 버려 ‘대구’로
21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대치동의 아파트 매매 거래가 활발해지고 있다. 워낙 대형의 고가 아파트가 많아 강북 등 다른 지역처럼 매매 거래량이 크게 늘어나지는 않아도 잠잠했던 과거 몇 년과 비교하면 활발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게 부동산 업계의 설명이다. 이 지역 A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이달 아파트 매매 거래량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20∼30% 늘었다”며 “전세 물량이 워낙 없으니 실수요자들이 저금리를 이용해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사들인다”고 말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대치동 아파트의 매매 거래량은 4년 전인 2011년 같은 기간보다 68.8%가 뛰었다. 거래가 늘면서 대치동 주요 아파트들의 실거래가도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 ‘대치 학군’ 반포는 월세거래 크게 늘어 ▼
인기 학군 배정에 유리한 곳으로 알려진 대치 삼성아파트 전용 97m²는 지난해 12월 11억500만 원에서 올 6월 11억3750만 원으로 6개월 만에 약 3250만 원 뛰었다.
‘대구족’ 증가세는 학원가가 탄탄한 대치동을 포기할 수 없는 학부모들이 이끌고 있다. 이 지역 B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이 지역 아파트 값이 그동안 많이 떨어졌다고 보는 학부모들이 더 오르기 전에 사겠다고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대치동을 중심으로 한 강남구는 사교육 일번지로서의 위상이 여전하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서울의 사설학원(교습소, 개인과외 교습자 포함) 4만5776곳 중 17.5%인 8011곳이 강남·서초구를 관할하는 강남교육지원청 소속이다. 이 지역 학원 관계자는 “다른 지역에서 학원을 운영하던 사업자들이 대치동에 들어갈 자리가 없다고 할 정도”라고 털어놨다.
○ 재건축 아파트 기대감도 한몫
대치동 아파트가 부각된 이유는 최근 강남 재건축 아파트 매매가가 오르며 ‘이제 강남에서 많이 오를 곳은 대치동밖에 없다’는 기대심리가 작용한 결과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이동현 하나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대치동은 그간 압구정동 등 강남의 다른 지역보다 잠잠했지만 최근 재건축 아파트 값 상승 기대감으로 투자자가 늘고 있다”며 “자녀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재건축 아파트 투자에 나서는 자산가들도 있다”고 전했다.
대치동과 비교적 가까운 서초구 반포동 ‘월세’도 함께 주목받고 있다. 대치동 주요 학원들이 반포동까지 버스를 운행해 ‘대치학군’을 누릴 수 있고 신축 아파트와 쇼핑 시설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 상반기 반포동의 랜드마크 격 아파트인 ‘래미안퍼스티지’ 월세 거래량은 55건으로 전세 거래량(29건)의 갑절에 가까웠다. ‘반포자이’도 상반기 월세 거래가 93건으로 전세(86건)보다 많았다.
서초구 반포동 럭키공인의 한 공인중개사는 “이 지역은 대치동 학원가와 가깝고 학군도 좋은 편인데 전세금은 2년간 2억 원가량 올랐다”며 “전세금이 턱없이 비싸니 월세로라도 2, 3년 더 버티겠다는 학부모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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