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훌륭한 판사’의 기준으로 ‘독립성과 중립성’을 꼽는다. 개인의 가치관이나 성향, 출신 배경으로부터 한발 떨어져서 오직 법리적으로만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립성을 가장 엄격하게 훈련받은 엘리트집단인 미국의 판사들조차 사실은 자신이 가진 개인적 특성들, 즉 정치적 신념, 인종, 성별 등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연구가 많이 등장했다. 애덤 글린 미 하버드대 정부학연구소 교수 연구팀은 최근 연구에서 한발 더 나아가 특정인이 다른 사람들과 맺고 있는 ‘관계’ 역시 판단에 영향을 크게 미친다는 점을 밝혀냈다. 그들은 미 항소법원 판사들의 자녀 구성을 조사해 딸이 있는 것과 판결 성향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를 분석했다. 이 연구 자체는 판사를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역시나 기업의 명운을 결정하는 ‘판단’을 내려야 하는 최고경영자(CEO)나 여타 조직 리더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연구자들은 244명의 항소법원 판사들의 자녀 구성을 각종 부고 기사, 동창회보 등을 통해 조사한 뒤 그들이 실제 내린 990건의 사건에 대한 2674개의 판결을 분석했다. 그 결과 직장 내 성차별과 낙태 문제 등 여성에게 민감한 사안에서 최소한 딸을 한 명 이상 가진 판사들이 여성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경향이 있음을 밝혀냈다.
이들은 몇 가지 가설을 세웠는데, 그중에서 ‘딸의 압력이나 로비’에 의해 여성 친화적 판결을 내리게 된다는 ‘딸 바보 가설’ 역시 맞는 것으로 확인됐다. 판사 자신이 남성이더라도, 또 보수적 판사라도 딸이 있는 경우에 훨씬 여성 친화적 판결을 내렸다.
이 연구는 조직의 리더들이 가깝고 지속적인 관계를 통한 자연스러운 경험의 공유를 통해서도 입장이 다른 사람에 대한 높은 이해와 공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또한 이 과정을 통해 다양성을 존중하는 리더가 될 수 있다는 시사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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