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용 기자의 죽을 때까지 월급받고 싶다]<42>웃으며 든 연금저축, 왜 울면서 깰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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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 수준미달 금융사 적지 않고 중도해약때 토해내는 세금환급금
세액공제 전부 받은걸로 일괄계산
보험 형태로 가입한 연금저축은 보험료 2번 안내면 계약효력 상실

홍수용 기자
홍수용 기자
올해 초 기자는 TV 광고모델 제안을 받았다. 한 금융회사의 홍보대행사가 “재테크 책 저자인 기자를 광고에 쓰면 상품 신뢰도를 높일 수 있을 것 같다”며 의사를 물었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광고에 나가면 기자의 객관성, 중립성이 깨진다. 애초부터 안 될 거래였다.

모델 건은 웃으며 넘길 일이지만 기자를 광고에 출연시키려는 의도는 곱씹어봐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연금저축 등 금융상품에 쉽게 가입한 뒤 후회하며 해지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이유를 보여주는 단서가 여기에 있다.

기자에게 전화한 대행사 관계자는 “모델이 우리 상품을 직접 설명하도록 할 예정인데 금융 관련 자격증이 있느냐”고 물었다. 광고가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뿐 아니라 대중적 인기와 거리가 먼 사람까지 동원해 전문적 이미지를 만드는 단계로 진화한 셈이다. 소비자로선 광고 내용 중 사실과 과장을 골라내기가 더 어려워졌다.

요즘 저금리시대 노후보장 수단으로 떠오른 연금저축에서 이런 이미지 유혹의 위험이 특히 크다. 연금저축은 민간 영역의 핵심 사회보장장치다. 소비자들이 모르고 지나치는 구멍이 생기고 있다면 ‘호미로 막을 일이 가래로도 못 막을 일’로 비화하기 쉽다.

무엇보다 연금저축 가입 뒤 관리체계에 이미 큰 구멍이 있다.

요즘 한 금융회사는 유명 운동선수를 모델로 개인연금저축 광고를 하고 있다. 이 선수가 체력을 유지하는 비결이 피트니스라며 개인 트레이너가 몸 관리를 해주듯 금융회사가 개인연금을 관리한다는 내용이다. 가입만 하면 연금저축 관리가 저절로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광고를 한 금융회사는 우량회사다. 실제로도 연금저축의 사후관리 수준이 높은 편이다. 하지만 수준 미달인 회사도 적지 않다.

이 광고 이후 연금저축 전반에 인기가 높아지는 분위기다. 일례로 올 들어 7월까지 연금저축펀드에 들어온 자금은 1조1000억 원으로 지난해 들어온 1조400억 원을 넘어섰다. 소비자가 광고를 일반화하며 연금저축을 맹신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 정도다.

상품 관리실태를 알아보려고 기자가 연금저축에 든 A금융회사에 전화를 걸어 상품증서를 e메일로 요청했다. 3년 전 가입 이후 한 번도 기자는 상품운용실적 등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금융사가 보내온 3쪽짜리 증서에는 계약자 인적사항, 계약일, 만기일, 보험료 액수, 연금 개시일자 등 기본적인 내용만 있었다. 연금의 알맹이인 ‘나중에 연금을 한 달에 얼마나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주지 않았다.

다시 예상 연금수령액 등을 e메일로 달라고 요청하자 “문서 형태로는 줄 수 없고 구두로만 알려줄 수 있다”는 황당한 답이 돌아왔다. 현재 공시이율이 나중에 바뀌면 예상 연금액도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분쟁의 소지가 될 수 있는 사안이어서 증거를 남기지 않겠다는 뜻 아닌가. 많은 금융회사들이 비슷하다. 이런 식이라면 금융회사들이 연금저축에 가입한 고객을 관리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1년에 한 번 정도 공시이율과 이에 따른 예상연금을 금융사에 확인해 자신의 노후 설계도를 수정해야 한다.

연금저축의 구멍은 이것만이 아니다. 연금저축은 연 400만 원 한도로 16.5%(연소득 5500만 원 초과인 근로자는 13.2%)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중도 해약하면 가입 기간에 환급받은 세금을 모두 토해내야 한다는 점도 많이 알려져 있다.

반면 금융사들이 중도 해약 때 토해내야 할 세금을 주먹구구로 계산하는 점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업계의 불편한 진실이다. 예를 들어 연금저축 가입 기간 5년 동안 세액공제를 3년만 받았던 사람이 중도 해약을 요청하면 금융사는 5년 동안 세액공제를 받은 것으로 간주하고 해약환급금을 준다. 소비자가 별도로 ‘가입 기간 5년 중 3년만 세액공제를 받았다’는 점을 입증하지 않으면 5년 치를 무조건 뗀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도 이 점을 알지만 보험사로선 과세 정보를 확인할 길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소비자로선 납득하기 힘든 비정상이다. 현재로선 연금저축 해지 때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국세청에서 세액공제 확인서를 발급받아 보험사에 증빙자료로 제출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또 연금저축을 보험 형태(연금저축보험)로 가입했다면 실효 조건에 유의해야 한다. 보험료를 두 번만 안 내면 보험계약의 효력이 없어진다. 설계사가 가입 때는 이런 점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마이너스통장 막기에 급급한 개인으로선 빠뜨리기 쉽다. 일부 상품은 가입 기간 7년이 지나면 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그동안 낸 보험료 적립금에서 계약 관리비를 떼는 방식으로 계약을 유지해 주기도 한다. 보험이 실효됐을 때는 바로 해약하지 말고 그대로 두는 게 낫다. 실효 뒤 2년 내 보험료를 낼 형편이 됐을 때 계약을 되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보험사를 방문해 그동안 밀린 보험료와 이자를 내면 된다.

연금저축은 국민연금, 퇴직연금으로는 부족한 자금을 보충할 수 있는 최적의 대안이다. 최선의 연금 재테크는 깨지 않는 것이다. 반면 금융회사가 두려워하는 것은 소비자가 연금 가입 뒤 오래오래 남아 있는 것이다. 소비자는 연금을 중도 해지하면서 울지만 금융회사는 울지 않는다. 속으로 웃을지도 모른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연금저축#중도해약#악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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