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자신이 창업한 회사(일본 롯데홀딩스)에서 차남(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소집한 이사회의 결정으로 해임됐다. 이번 사태의 결과로 신 총괄회장은 일본 롯데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됐다.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로 선임된 신동빈 회장의 지배력은 더욱 강해졌다. 하지만 신 총괄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한국과 일본 롯데그룹에서 여전히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어 경영권 갈등은 이제부터라는 분석이 많다.
○ 전세기 띄운 장남의 승부수
이번 사태의 발단은 신 총괄회장이 해임되기 하루 전인 27일 신 총괄회장의 장남인 신동주 전 부회장이 친족 5명과 함께 신 총괄회장을 일본으로 모셔가면서부터다. 신 총괄회장의 장녀인 신영자 롯데재단 이사장과 종질(5촌 조카)인 신동인 롯데자이언츠 구단주 직무대행이 동행했다. 신 전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롯데상사 부회장 겸 사장, 롯데아이스 이사 등 일본 롯데그룹 계열사 임원에서 잇따라 해임됐다. 올해 1월에는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에서도 물러났다.
이후 신 전 부회장은 거의 한국에 머물다시피 하며 아버지인 신 총괄회장에게 ‘자신의 직위를 회복시켜 줄 것’을 간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27일 오전에는 신 총괄회장을 찾아 일본행을 설득했고 신 총괄회장이 이를 수락했다. 이들의 일본행은 전세기를 띄울 정도로 극비리에 진행됐다. 이 비행기에 탄 한국 롯데그룹 관계자는 없었다. 롯데그룹이 28일까지 관련 내용을 전혀 몰랐던 이유이기도 하다.
27일 오후 신 총괄회장과 신 전 부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에 나타났다. 임원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신동주 전 부회장이 동생인 신동빈 회장,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 사장 등 일본 롯데홀딩스의 대표이사 2명을 포함한 이사 6명의 해임 통보를 주도했다.
○ 형제 갈등 재발 가능성
부자간, 형제간 경영권 분쟁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롯데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신 총괄회장의 영향력이 여전하고 신 전 부회장은 신동빈 회장에 맞설 만큼 계열사 지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롯데와 한국 롯데를 잇는 핵심 계열사는 일본 롯데홀딩스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한국 롯데그룹의 지주사 격인 호텔롯데의 지분 19.07%를 갖고 있다. 신 전 부회장과 신 회장의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은 각각 20% 정도로 비슷하다. 두 형제의 지분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10∼12% 정도인 우리사주 지분으로 일본 롯데홀딩스 임직원들이 보유한 주식이다. 현재 우리사주 지분은 신동빈 회장 편인 것으로 알려졌다. 15일 신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로 선임된 배경이기도 하다. 현재로서는 신동빈 회장이 경영권 다툼에서 유리한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 27.65%를 갖고 있는 일본 광윤사다. 광윤사는 포장 원료를 만드는 비상장 회사로 신 총괄회장이 최대주주다. 광윤사의 지분은 정확히 공개되지 않았지만 두 형제가 비슷하게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 총괄회장이 형제 중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광윤사의 주인이 결정된다는 의미다. 광윤사를 지배한다는 것은 결국 일본 롯데와 한국 롯데를 좌지우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신 전 부회장은 한국 롯데 계열사의 지분도 상당 부분 보유하고 있다. 핵심 계열사인 롯데쇼핑의 신 전 부회장 지분은 13.45%로 신 회장(13.46%)보다 불과 0.01%포인트 적다. 이번 일본행에 함께한 누나 신영자 이사장의 지분 0.74%를 합친다면 신 회장보다 많은 지분을 확보하게 된다. 롯데제과 롯데푸드 등의 계열사도 신 전 부회장 지분과 신 이사장 지분을 합치면 신 회장보다 많다. 여기에 신 총괄회장까지 본인의 지분을 신 전 부회장에게 보태면 신 회장은 사면초가에 몰릴 수도 있다.
한편 신 총괄회장과 신 이사장은 28일 오후 10시경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 없이 공항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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