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도 벤처… 창농 CEO 10만명 키우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9일 03시 00분


[創農이 일자리 큰밭]<1>귀농에서 창조농업으로

“귀농귀촌 10만 명을 창농(創農) 10만 명으로 바꾸는 데 지금이 적기입니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창농인’ 1세대다. 1981년 대학 졸업 후 바로 귀농했다. 한국산 키위에 ‘참다래’란 이름을 붙이고 농산물 시장 개방에 맞서 전국의 재배 농가를 모아 참다래 유통사업단을 꾸렸다. ‘신지식농업인’으로 선정돼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이름을 올렸다. 정 전 장관은 “귀농귀촌 붐이 불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농촌 창업을 위한 A부터 Z까지 모두 바꿔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 3년 뒤면 귀농귀촌 10만, 지금이 ‘창농’ 기회

우리 농촌에 사람이 돌아가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005년까지 1000가구를 오르내리던 귀농귀촌은 2011년 1만 가구를 넘어서며, 이른바 ‘퀀텀 점프(Quantum Jump·대도약)가 있었다. 지금 추세라면 2018년 누적 10만 가구를 넘을 가능성이 크다.

청년층 귀농은 더욱 고무적이다. ‘농사는 노인 일자리’라는 선입견에도 귀농귀촌의 40%가 40대 이하에서 이뤄진다. 특히 지난해 30대 이하 귀농인은 7743명으로 전년 대비 53% 성장을 이뤄 전체 연령대 중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하지만 ‘일자리의 질’을 놓고 보면 이야기가 다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해 귀농인 26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업농가의 연평균 소득은 3240만 원이다. 도시근로자 가구의 연평균 소득(4734만 원)과 비교하면 1500만 원 정도 낮다. 새로 정착한 젊은 귀농인들도 여전히 수익성이 낮은 작물 재배에 몰두하고 있다는 의미다.

유상오 한국귀농귀촌진흥원장은 “고소득 농업을 위해서는 농산물을 가공하는 2차 산업이나 농업 관광 등의 3차 산업을 함께 병행하는 ‘창농’은 필수”라고 진단했다.

○ 10만 창농, 혁신으로 만들자


귀농귀촌인을 ‘10만 창농인’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혁신이 필요하다. 이는 농어업 분야의 규제 개혁과 정부의 집중 투자까지 포함하는 의미다.

일부 전문가는 창농 활성화를 위한 하나의 아이디어로 ‘국유림 규제 철폐’를 꼽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한국의 산지(山地) 개발을 위해서는 10개 부처가 가진 20여 개 중첩 규제를 뚫어야 한다. 그 정도 규제를 풀어줄 각오로 창농 촉진에 나서야 농업 선진화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운천 전 장관은 “산아제한과 산림녹화는 1960년대에 함께 시작됐지만 산아제한은 이미 풀렸고 산을 개발하는 것은 여전히 불법”이라며 “한국의 산이 녹화 목적을 이미 달성한 만큼 10∼20명씩 모여 협동조합을 이룬 창농인에게 방치된 국유림에 경제림을 조성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젊은 창농인들이 짊어지는 ‘실패 리스크’를 정부가 분담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이정환 전 농촌경제연구원장(GS&J인스티튜트 이사장)은 “자본이 없는 젊은이들이 창농할 때 최소한 도시 창업만큼 금융 및 보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며 “지금 청년들이 농촌에 관심을 보이는 만큼 도전 기회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27일 청년고용대책을 발표했지만 귀농 청년층을 위한 대책은 없었다. 귀농귀촌자를 위한 교육 예산도 29억 원에 불과해 전체 일자리 창출 예산과 비교하면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 창농 위한 농업 연구개발(R&D) 나서야

아이디어만 있으면 농업도 정보기술(IT) 벤처 못지않게 생산성 높은 산업일 수 있다. 농촌 창업 자체가 결국 1차 생산물에 가공(2차 산업)과 서비스(3차 산업)를 덧붙이는 행위다. 이 부분을 소홀히 한다면 결국 단순 귀농자만 늘리는 결과를 낳는다.

여기서 한국이 전범(典範)으로 삼을 수 있는 국가가 이스라엘이다. 14일 경기 과천시 경마공원에서 열린 ‘2015 창조 농생명 과학대전’에서 이스라엘은 14개 부스를 차려 운영했다. 대부분 IT에 바탕을 둔 농업 기술로 작물에 물이 자동 공급되거나 작황 정보가 실시간으로 농부의 스마트폰에 입력되는 등의 신기술을 선보였다.

이스라엘의 농업 인구는 6만4000명으로 한국(163만3000명)의 4%에 불과하지만 농업 수출액은 한국의 73%에 이른다. 수출에 유리한 작물을 국가 차원에서 선정해 농민들에게 보급한 뒤 농업 예산의 20%를 들여 R&D까지 나선 결과다. 오페르 삭스 이스라엘수출공사 사장은 “많은 농민이 기업과 연구소에 직접 기술 자문을 하고, 그 성과를 널리 공유한다”고 설명했다.

민승규 전 농림수산식품부 차관은 “한국 농업이 제조업의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처럼 ‘세계 1등’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한국 특성에 맞는 제품을 맞춤 생산할 수는 있다”며 “기존 농가가 그동안 하지 않았던 부분에 진출하고, 정부와 기업이 이를 지원해야 ‘작지만 강한’ 창농 국가로의 혁신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명 jmpark@donga.com·김성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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