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는 청춘에게 농촌은 ‘블루오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9일 03시 00분


[創農이 일자리 큰밭]<1>귀농에서 창조농업으로

충북 음성군에서 흑돼지를 기르는 이연재 씨(왼쪽 사진 앞)가 남편 장훈 씨와 함께 가축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충남 천안시에서 블루베리를 재배하는 함승종 씨(오른쪽 사진)에게 블루베리는 자식 같은 작물이다. 함 씨가 잘 익은 블루베리 열매를 보이고 있다. 천안=김경제 기자kjk5873@donga.com·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제공
충북 음성군에서 흑돼지를 기르는 이연재 씨(왼쪽 사진 앞)가 남편 장훈 씨와 함께 가축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충남 천안시에서 블루베리를 재배하는 함승종 씨(오른쪽 사진)에게 블루베리는 자식 같은 작물이다. 함 씨가 잘 익은 블루베리 열매를 보이고 있다. 천안=김경제 기자kjk5873@donga.com·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제공
함승종 씨(65)는 2003년까지 침구 생산업체 이브자리 계열사의 사장이었다. 지금은 충남 천안시 입장면의 농원에서 블루베리를 생산하고 가공하는 블루베리코리아의 대표다. 서울 회사의 최고경영자(CEO)가 왜 시골에서 밭을 갈게 됐을까.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기존 임원들이 구조조정 당하는 모습을 보며 평생직장이란 게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자연히 은퇴 후를 그려 보게 됐고 농촌에서 희망을 발견했지요.”

함 씨가 농촌행을 결심한 것은 51세 때인 2001년. 처음 농사를 지어 보는 함 씨는 기업 경영에 있어서는 프로였지만 농사에 대해서는 생초보였다. 그는 ‘수익성 높은 작물을 재배한다’는 명확한 원칙을 세우고 미국, 일본 등 해외에 있는 지인들에게 작물을 추천받았다. 한국보다 고령화가 먼저 이뤄진 곳에서 많이 팔리는 작물이라면 국내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지인들이 함 대표에게 공통적으로 추천한 작물은 바로 블루베리였다.

“그때는 정말 막막했어요. 블루베리를 어떻게 재배하는지 심지어 어떤 작물인지도 잘 몰랐거든요.”

함 씨는 무작정 블루베리의 원산지 중 하나인 미국을 찾아갔다. 당시 블루베리는 미국에서 ‘달러 트리(나무)’라 부를 정도로 수익성이 높았다. 함 씨는 뉴저지에서 블루베리 농사를 짓고 있는 한 재미교포의 농장과 대표적인 블루베리 산지인 미시간 주의 70년 된 블루베리 농장을 방문해 공부를 시작했다.

함 씨는 현재 블루베리 농사 1세대로 통한다. 1년에 두 명 정도 지금까지 20명의 청·장년 귀농 희망자가 그의 농장에서 블루베리 재배 방법을 배워 갔다. 첫 수확량은 300kg 정도였지만 10년 뒤인 올해는 100배인 30t을 수확했다. 처음 2만6446m²로 시작했던 재배지도 현재 8만2644m²까지 늘어났다.

“저는 50세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꿈과 열정을 가진 젊은이들이 기업가 정신을 갖고 철저히 준비한다면 창농에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 믿습니다.”

함 대표의 말처럼 농촌에서 희망의 빛을 발견한 청년 경영인도 나오고 있다.

2013년 귀농한 이연재 씨(33·여). 이 씨가 운영하는 블로그(blog.naver.com/xmr2)에는 웃고 있는 흑돼지 사진이 나온다. 이 씨는 바로 이 흑돼지의 미소에서 희망을 봤다.

“유기농 채소처럼 가축도 건강히 키우고 싶다는 생각에 귀농을 하게 됐어요.” 서울에서 29세까지 포토그래퍼로 일하던 이 씨는 귀농을 결심한 뒤 자연 양돈 농가를 찾아다니고 축협에서 여는 돼지 종자 강의를 들으며 관련 지식을 쌓았다. 어릴 때부터 시골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던 남편도 이 씨의 뜻에 흔쾌히 동의했다. 하지만 남편은 다니던 직장을 바로 그만두지 않았다. 이 씨는 “젊은 부부의 경우 귀농을 결정함과 동시에 둘 다 직장을 그만두는 수가 있는데 이럴 경우 오히려 위험이 커질 수 있다”며 “한 사람이 먼저 농촌으로 내려간 뒤 소규모로 일을 시작하고 배우자는 그 기간에 직장을 다니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 씨는 돼지의 분뇨를 비료로 이용해 사료를 재배하고 이것을 다시 돼지에게 먹이는 ‘자연순환농법’으로 돼지를 키운다. 이 씨는 “처음에는 판로를 개척하기 어려웠다”고 회고한다. 돼지를 기존 농가처럼 가축 직판장에다 팔아서는 돈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씨는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블로그에는 부부가 함께 돼지를 키우는 사진과 영상 등을 올리며 소비자들에게 자신의 먹거리가 어떻게 자라는지 보여 줬다. 이 씨의 흑돼지는 주부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직거래가 점차 늘어났다. 현재 그는 흑돼지 60마리를 키우며 연소득 4000만 원을 올리고 있다.

이 씨 같은 20, 30대 젊은층뿐 아니라 중장년 중에서도 은퇴 및 노후 대비를 위해 농촌에서 지식 창업을 하는 사례도 있다. 2011년 제주도로 내려가 노지 감귤을 재배하는 이형재 씨(64)는 서울 굴지의 대기업에서 임원까지 지냈지만 평소 그리던 귀농의 꿈을 이룬 경우다. 그는 “농사 비결이라면 농업기술원 등에서 가르쳐 주는 정석대로 한 것밖에 없다”며 웃었다. 현재 7600m²짜리 감귤 과수원의 사장님이 된 이 씨는 “아직 농촌에는 젊은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며 “도전 의식을 가진 청년들이라면 농촌은 오히려 블루오션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남양호 전 한국농수산대 총장은 “이제는 ‘농사’가 아니라 ‘농업’의 관점에서 창농을 생각해야 한다”며 “농업도 하나의 사업으로 생각하고 경영자의 눈으로 접근한다면 청·장년층 모두에게 성공의 기회가 열려 있다”고 밝혔다.

천안=백연상 baek@donga.com / 김성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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