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청이 ‘정권을 잃을 각오로 노동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뒤 임금피크제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생각하는 노동개혁은 해고 요건 완화와 임금피크제 도입을 양 축으로 한다.
해고 요건 완화가 과도한 정규직에 대한 보호를 완화하는 방식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풀기 위한 것이라면 임금피크제는 청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려는 방안이다. 정부는 민간 기업들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그렇게 절감한 인건비로 청년을 더 채용하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노조와 야당은 임금피크제를 도입해도 채용을 늘린다는 보장이 없는데 근로자들만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넘어야 할 난관이 많겠지만 임금피크제의 확산은 불가피해 보인다. 구미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해고가 어려운 한국의 특성을 고려할 때 내년부터 시작되는 정년연장의 충격을 피할 뾰족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청년층의 아픔을 더이상 외면하기 어려운 만큼 선배 세대의 희생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다만 임금피크제가 청년 일자리 문제를 풀 해결책이 되려면 근로자의 생각과 기업들의 문화 등 바뀌어야 할 것이 적지 않다.
10년 전부터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고 있는 은행권을 보자. 국민 우리 하나 외환 기업은행 등의 직원들은 만 55세가 되면 60세 정년퇴직 때까지 임금이 서서히 줄어드는 임금피크제를 선택하거나, 5년간 받을 월급총액을 위로금으로 받고 퇴사하는 명예퇴직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상당수는 명퇴를 선호한다. 우리은행의 경우 35%가 임금피크제를 선택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지만 기업은행은 12%, 하나은행은 0.5% 수준에 그친다.
그 이유로 은행권 종사자들은 임금피크제에 진입하는 순간 담당 업무가 단순 업무나 후선 업무로 바뀌는 점을 꼽는다. 시재금 확인, 연체대출 회수, 전표 확인 등 입행 4, 5년 차 때 하던 일을 맡게 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또 후배를 상사로 두고 그 밑에서 일하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임금피크제가 뿌리내리기 쉽지 않다.
임금피크제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직원 개개인이 꾸준히 전문성을 쌓으며 준비해야 한다. 연조가 찼을 때 직원들을 감독하고 지시하는 매니저의 역할에 만족하지 않고 임금피크제 단계에 들어갔을 때 동료 직원들보다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스스로 개발해야 한다.
근로자들은 연공서열 위주의 사고방식을 바꿔야 임금피크제 정착이 가능하다. 선배들이 후배 부서장 밑에서 일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고, 후배 부서장이 선배 부원에게 업무 지시를 하는 걸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문화가 필요하다.
며칠 전 NH농협은 노사 합의로 임금피크제 도입에 합의해 눈길을 끌었다. 회사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를 허권 노조위원장에게 물었다. “작년부터 노사 협상을 해왔는데 사측이 오랜 시간 회사 경영이 어떤 어려움에 처했는지, 왜 임금피크제가 필요한지 허심탄회하게 설명해 왔습니다. 진정성이 느껴지더군요. 노조원들을 설득했죠. 60%가 찬성했어요. 노조는 사측을 믿었고, 노조원들은 노조 집행부를 믿어줬기에 가능했죠. 사측에 꼭 신규 채용을 늘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임금피크제는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제도다. 노동 경직성이 높고 해고 요건이 까다로운 한국으로서는 임금피크제라는 완충장치가 있어야 청년 신규 채용의 여지가 생긴다. 노사가 선배 세대로서 후배 세대를 위해 임금피크제의 정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진심을 갖고 협력할 때 분명 청년실업 문제를 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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