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터넷 비즈니스 전문 잡지 ‘와이어드(Wired)’의 편집장을 지낸 크리스 앤더슨은 2004년 온라인에서 1년에 단 몇 권밖에 팔리지 않는 비인기 책들의 판매량을 모두 합하면 베스트셀러 서적의 매상을 추월하는 데 주목해 ‘롱테일 법칙’을 제안했다. 온라인의 발달로 몇 개의 히트 상품이 지배했던 시장의 법칙이 바뀌고 꼬리에 있던 틈새 상품들의 힘이 거세지는 현상을 지목한 것이다.
하지만 롱테일 법칙이 모든 콘텐츠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서적과 달리 영화 관련 콘텐츠에서는 여전히 소수의 블록버스터가 전체 매출을 지배한다. 이유가 뭘까. 플로리다대와 카네기멜런대 교수들로 구성된 연구진은 영화가 직접 경험하기 전엔 가치를 평가하기 어려운 ‘경험재’라는 사실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연구진은 영화 DVD의 경우 장르, 줄거리 등의 단순 정보만으로는 소비자들이 구매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고 봤다. 그래서 제작사와 보급사가 여러 마케팅 경로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소수 블록버스터에 DVD 판매가 편중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연구진은 이를 입증하기 위해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된 이후 케이블 채널을 통해 방영됐을 때 DVD 매출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분석했다.
실제로 HBO, 시네맥스 등 케이블 채널에서 상영되기 전 전체 DVD 매출액의 48%를 블록버스터 영화가 차지했지만 케이블 방영 이후에는 이 비중이 35%로 떨어졌다. DVD 매출에서 블록버스터의 편중 현상이 감소했다는 건 인기 차트 하위권에 있던 영화들의 케이블 채널 방영 이후 DVD 판매가 늘었다는 뜻이다. 이는 정보 부족으로 소비자들이 DVD 구매를 하지 않던 비인기 영화도 케이블 채널 방영을 계기로 틈새 콘텐츠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관심을 이끌어내 DVD 판매가 증가한 덕택이다.
결국 소수 블록버스터에만 집중돼 있는 현재의 유통전략에서 벗어나 소비자들이 다양한 콘텐츠에 대한 정보를 보다 손쉽게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영화 콘텐츠 시장 전체가 커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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