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90·사진)이 1995년 2월 22일 장남인 구본무 부회장에게 그룹 회장직을 물려주며 한 퇴임의 변(辯)이다. 창업세대인 허준구 LG전선 회장(작고), 구평회 LG상사 회장(작고), 구두회 호유에너지 회장(작고), 허신구 LG석유화학 회장(현 GS리테일 명예회장) 등도 이때 모두 고문으로 물러났다. 구 명예회장은 이임식 전날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1, 2세 원로들을 모두 모아놓고 ‘나가자’고 말한 것은 아니다. 몇 사람에게 내 생각을 말했지만 강요한 것은 아니고 그들이 자발적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최근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간 형제 다툼이 점입가경으로 치달으면서 20년 전 구 명예회장의 통 큰 결단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구 명예회장은 당시 건강에 전혀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지인들에게 만 70세가 되면 회장직을 내려놓겠다는 뜻을 여러 번 밝혔고 결국 이를 실행에 옮겼다. 그룹 총수로서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음에도 일찌감치 경영권을 이양해 ‘승계 리스크’를 최소화한 것이다. 특히 1, 2세대들의 동반 퇴진으로 구본무 신임 회장을 비롯한 3세 경영인들이 자신들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LG가(家)는 구인회 창업주 이래 구 명예회장과 구본무 현 그룹 회장까지 모두 장남에게 경영권을 승계했다. 1969년 12월 31일 구인회 창업주가 타계하자 이듬해 1월 초 그의 동생인 구철회 락희화학 사장(작고)은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구자경 부사장을 제2대 회장으로 추대하자”고 제안하면서 스스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런 삼촌의 모습이 구 명예회장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게 재계의 일반적 시각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05년 1월 LG그룹과 GS그룹의 계열분리를 최종 승인했다. 구본무 회장이 1947년 이후 3대째 이어진 구씨 집안과 허씨 집안 간 동업을 순조롭게 마무리한 것도 구 명예회장의 ‘무욕(無慾) 경영’과 맥락을 같이한다는 분석이다. 특히 “한 번 사귀면 헤어지지 말고 부득이 헤어지더라도 적이 되지 말라”는 구인회 창업주의 뜻을 따라 LG와 GS는 같은 산업군 내 경쟁을 최대한 피하고 있다.
구 명예회장은 평일에는 충남 천안연암대학에 머물며 소일을 하다 주말에는 서울 자택으로 올라온다. 이 대학은 1973년 그가 아버지의 호(연암)를 따 직접 설립한 곳이다. LG그룹 고위 관계자는 “구 명예회장은 지금도 활동에 별 지장이 없을 정도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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