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유종]덴마크 도축장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4일 03시 00분


이유종 국제부 기자
이유종 국제부 기자
덴마크 호르센스의 한 도축장. 도축된 육류가 늦어도 서너 시간 안에 덴마크 전역에 배달되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하루 돼지 2만 마리가 처리된다. 돼지가 들어오면 이산화탄소로 기절시키고 도축 가공 포장 등 모든 과정이 자동이다. 외관은 반도체공장처럼 보인다. 외부에선 특유의 동물 냄새도 전혀 나지 않는다. 직원 급여는 독일이나 스웨덴보다 2, 3배 많다. 그래도 경쟁력이 있다. 지난해 이 도축장은 250억 덴마크 크로네(약 4조30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덴마크 축산업의 효율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덴마크 축산업계의 대표 상품은 돼지고기다. 농가는 인구(약 560만 명)보다 2배 이상 많은 돼지 1200만 마리를 키운다. 80% 이상은 도축해 130개국으로 수출한다. 수출량은 미국 캐나다 브라질 다음으로 많다.

덴마크 축산업의 성공 비결은 한마디로 효율성이다. 농부들은 19세기 말 이미 축산협동조합을 세워 도축, 판매 등에서 시너지를 추구했다. 축산 농가는 40년 전과 비교할 때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지만 돈육 생산량은 계속 늘고 있다. 어미 돼지 한 마리가 1년간 새끼를 낳으면 출하될 때까지 24마리 이상이 살아남는다. 한국은 13마리에 불과하다. 하루 돼지 한 마리의 체중 증가도 866g으로, 한국(680g)보다 27% 많다. 생산비는 한국의 71%에 불과하다. 모두 효율을 추구한 결과다.

판매에서도 효율이 우선시된다. 영국에는 베이컨용 비(非)거세 돈육을, 빛깔을 중시하는 일본에는 붉은색 고기를 공급하고 있다. 족발과 귀, 꼬리, 머리 등은 아시아 국가에다 팔아치운다. 비계는 식용기름과 동물사료, 바이오에너지에 사용한다. 소비되지 않고 그냥 폐기하는 돼지의 부위는 하나도 없다. 판매 시장에서는 미국 캐나다와 가격 경쟁을 하기 어려워 고급 육류 공급에 집중하고 있다.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고급 돈육의 최대 시장인 일본시장에서 덴마크 돈육의 시장점유율이 25%에 달한다.

국내 축산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성장 속도가 매우 더디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에 인적 물적 자원을 집중하다 보니 1차 산업인 축산업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덴마크를 보면 국내 축산업이 성장할 여지는 충분하다. 축산업계가 지금보다 더 효율성을 추구한다면 덴마크와 겨룰 수도 있다. 중국, 일본 등 소비량이 많고 성장세가 큰 시장도 가깝다. 정부는 2008년 축산업 효율화를 추진하며 50곳 이상의 도축장을 통폐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실제 문을 닫은 도축장은 10여 곳에 불과했다. 불법 도축도 여전하다. 덴마크 축산업계는 경쟁력을 더 끌어올리기 위해 1970년 54개에 달했던 협동조합을 2004년 2개로 대폭 줄였다. 1970년 60곳이던 도축장은 2009년 9곳으로 감소했다. 대신 도축장의 규모가 커져 경쟁력이 올라갔다. 한국은 갈 길이 멀지만 축산업 발전을 위해 선택지가 아직은 많이 남아 있다.

이유종 국제부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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