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찬의 SNS 민심]“태극기는 이런 데 쓰는 거 아니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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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롯데. 월드타워에 태극기 그리고 있다. 우리 완전 한국 기업이에요 그 말이지?”

@jam_***이 올린 트윗이다. 실제로 잠실 제2롯데월드타워에 대형 태극기 모자이크가 그려진 사진이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플랫폼을 가로지르고 있다. 롯데그룹의 가족혈투가 기업의 국적 문제로 번지는 양상이다. 가족 간의 경영권 쟁탈 스토리가 한국롯데와 일본롯데의 대결 스토리가 됐다. @genm****는 “제2롯데월드에 태극기 달면 뭐해. 어차피 일본에 다 퍼주는 게 사실인데. 일본 가보면 일본롯데과자와 일본롯데리아는 한국의 그것들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양도 많고 질도 좋고 가격도 적당함”이라고 가세했고, @kore******는 “롯데가 잠실롯데월드타워에 광복절을 기념해 대형 태극기를 설치한다고 한다.(한창 진행 중임) 국민을 바보로 아냐? 태극기는 이런 데 쓰는 거 아니다”라고 타일렀다.

7월 28일 일본 롯데홀딩스가 신격호 총괄회장을 해임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롯데가 뉴스의 전면에 등장했다. 롯데홀딩스는 일본 롯데그룹의 지주회사로, 롯데호텔을 통해 한국 롯데그룹 70여 개 계열사를 지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일본롯데는 신격호 총괄회장의 장남인 신동주 전 부회장이, 한국롯데는 차남인 신동빈 회장이 경영을 분담해 왔는데 그룹 규모는 한국롯데가 20배 정도 크지만 지배구조상 일본롯데의 지배를 받는 기이한 구조를 갖고 있다. 실제로 롯데 일가가 소유한 지분은 2.4%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이른바 순환출자 구조의 마법이 어떻게 재벌 구조를 관통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7월 29일부터 8월 5일까지 일주일 동안 트위터와 블로그 등에서 롯데를 언급한 문서는 모두 8만414건이 검색됐다. 콘서트라는 키워드를 제외했으나 야구 같은 어뷰징이 포함돼 있어서 경영권 분쟁을 언급한 문서 수는 이보다 다소 적을 것이다.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올라오는 스토리는 거의 막장 드라마 수준이다. 아들과 아버지의 얽히고설킨 배신이 담겨 있으니 그럴 만하다. 여기에 국적 문제까지 더해져 더 드라마틱해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 5년간 일본롯데가 한국으로부터 가져간 배당금만 3000억 원에 이른다는 이야기나, 부자가 일본어로 얘기를 나눴다는 디테일이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급기야는 불매운동까지 벌어졌다. 롯데와 함께 언급된 긍부정 연관어 1위가 불매운동이었다. 소상공인연합회가 롯데마트와 롯데슈퍼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는 한편 롯데카드 사용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성명서에서 “국민의 성원과 정부의 특혜로 성장한 롯데가 이를 이용해 롯데마트, 롯데슈퍼, 편의점 등을 무차별적으로 확장했고 골목상권을 짓밟아 왔다”고 주장했다. 롯데 일가의 경영권 분쟁이 재벌의 문어발 확장과 골목상권 침탈 이슈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긍부정 연관어 상위권에는 의혹, 막장, 욕먹다, 갈등 등 부정적인 단어들이 가득 들어있다.

롯데와 함께 언급된 전체 연관어 1위는 일본이었다. 1만2179건이 언급됐다. 2위는 롯데월드로 1만547건을 기록했다. 3위엔 한국(9908건)이 올라 롯데그룹의 국적 논쟁이 뜨거웠음을 말해주었고 4위는 8290건의 회장이 차지해 이번 사태가 일가의 경영권 분쟁임을 분명히 했다. 새정치연합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대한민국 재계 5위 그룹 롯데의 운명이 일본에서 결정된다니 기가 막힙니다. 대한민국의 안보가 이탈리아 해킹팀 손에 달렸다는데 경악합니다. 실제로는 재벌과 국정원 개혁 막으면서 말로만 경제와 안보 책임진다고 합니다. 그 말에 또 속으면 나라 무너집니다”라고 호소해 휴가철임에도 700건이 넘는 리트윗을 기록했다.

한편 알려지지 않은 주시자라는 닉네임을 가진 @unkn*****가 올린 “롯데는 한국에선 이윤을 모두 일본으로 가져간다고 욕먹고 일본에선 이윤을 모두 한국으로 가져간다고 욕먹는다. 두 개의 극단적인 주장이 있다면 진실은 보통 그 가운데쯤에 있다는 일반론에 입각하면 롯데는 모든 이익을 현해탄에 갖다 버리는 게 분명하다”는 트윗은 무려 1149회나 퍼져나갔다.

롯데발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삼부자 가운데는 신동빈 회장의 언급량이 가장 많았다. 뒤이어 신격호 총괄회장, 신동주 전 부회장 등이 근소한 차로 뒤를 이었다. 9위엔 경영권, 10위엔 재벌이 올랐다.

이번 롯데 사태의 외형은 집안싸움이다. 하지만 경기불황에 메르스까지 겹쳐 삶 자체가 고단한 국민의 눈에는 비현실적이다. 화도 난다. 소상공인들이 팔을 걷어붙인 이유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소유권 상속은 집안 문제지만 그룹 경영권은 집안 문제가 아니라 주주들의 허락을 받아야 할 사안이다. 주주 등 외부 이해관계자는 배제한 채 총수 일가 내부에서 경영권을 다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비판했다.

아무리 재벌이라고 해도 세계적인 문제로 떠오른 소득불평등 심화를 그냥 비켜갈 수 없다. 쉽게 말해 사내유보금을 710조 원이나 쌓아두고 칠흑처럼 어두운 청년실업 문제를 방치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나아가 투명하지 않은 가족경영 방식만 고집한다면 글로벌 경제의 험난한 파고가 버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제2롯데월드#태극기#롯데#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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