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붉은색 재킷에 정장 바지 차림으로 국민 앞에 섰다. 새누리당에서 ‘전투복’이라고 부르는 옷차림이다.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도 재임 중 결단할 일이 있을 때 보수당의 색깔인 푸른색 재킷을 입었다. 재킷 왼쪽 가슴 한참 위에 커다란 브로치를 다는 것도 두 사람의 공통점이다. ‘대통령 프로젝트’를 정하라
박 대통령은 2006년 6월 독일을 방문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만났다. 그 다음 날 대선 출마의 뜻을 발표했을 만큼 메르켈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러나 메르켈은 편하고 수수한 옷차림을 선호한다. 박 대통령은 옷차림이나 리더십에서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메르켈보다 결단하면 물러서지 않는 대처를 닮았다.
사실 노동개혁과 관련해 메르켈은 벤치마킹할 모델이 아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노동개혁을 밀어붙여 정권은 잃고 나라를 구했다. 2002년 독일 경제도 지금의 한국과 마찬가지로 수렁에 빠져 있었다. 그때 진보계열의 집권 사민당이 폴크스바겐의 구조조정을 이끈 페터 하르츠를 내세워 노동시장 개혁에 성공했다. 그게 ‘하르츠 개혁’이고 수혜자가 메르켈이다.
독일 노동개혁은 슈뢰더가 ‘집토끼’에 해당하는 노조의 강한 반발과 집권당 내부의 이견을 누르고 뚝심 있게 밀어붙인 결과다. 그런 점에서 우리 노동개혁이 처한 상황은 독일보다는 영국과 닮아 있다. 박 대통령은 6일 발표한 대국민담화를 준비하면서 ‘영국병’을 수술한 대처를 떠올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처의 방식은 우리 노동개혁에서 통하긴 힘들다. 시대 상황이 맞지 않고, 영국에는 국회선진화법도 없다.
2년 전 여야 정치권이 ‘정년 60세 연장 의무화’를 밀어붙였다. 이 무모함이 최악의 청년실업 문제와 맞물려 역설적으로 노동개혁의 불씨를 댕겼다. 쇠가 달았을 때 두드려 굽은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청년실업은 부모까지 좌절하게 만들어 집안의 불행으로 이어진다. 울분과 원성이 우리 사회 전체로 높아지고 있다.
마침 사퇴 의사를 밝혔던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이 복귀하고 한국노총도 노사정위에 복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노동개혁은 반드시 이뤄져야 하고, 이뤄진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산토끼’인 거대 노총과 야당을 설득해야 노동개혁이 가능하다. 양대 노총이 끝내 개혁에 귀를 닫으면 노사정위에 비정규직 노조나 청년실업 연대도 참여시켜 압박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대통령 프로젝트’로는 노동개혁이 적격이다. 담화에서 4대 개혁을 나열했지만 여기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노사정위에만 맡겨놓지 말고 박 대통령도 때가 되면 직접 야당과 노동계를 설득해야 한다. 이해관계의 조정자로서 얼마만큼 설득력을 보이느냐가 결국 대통령의 성패도 좌우한다.
전쟁이 한 차례 더 남아 있다
올 12월 정기국회가 끝나면 최경환 부총리 등 정치인 각료들은 여의도로 복귀한다. 정치깨나 안다는 사람들은 “전쟁이 한 차례 더 남아 있다”고 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당청 간의 충돌 ‘시즌 2’를 우려하는 경고다. 그때까지 노동개혁의 틀이 잡히지 않으면 개혁은 물 건너간다. ‘100일 전쟁’을 치르듯 개혁에 나서야 한다. 박 대통령이 사즉생(死則生)의 자세로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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