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은 명실상부한 자동차 강국이다. 지난해 생산된 차량은 452만 대로 10년 연속 세계 5위를 유지하는 등 겉보기엔 화려하다. 하지만 국내 사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전체 시장 중 수입자동차 점유율은 20%를 바라보지만 독일 디젤차 비중이 높고, 한국지엠과 르노삼성자동차는 신차개발 보다는 당장 실적에 급급해 본사 인기 모델을 수입해 팔면서 하청기지로 전락하는 모습이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총 80여 대의 수입 신차가 국내에 소개됐다. 벌써 2014년 연간 130대의 절반을 넘어선 것. 그야말로 국내 시장을 겨냥한 파상공세다. 이 기간 판매실적(11만9832대) 역시 지난해(9만4263대)보다 27.1%나 늘어났다. 특히 한국인들의 디젤차 선호는 압도적이다. 상반기에만 8만2023대가 팔린 디젤 모델은 점유율 68.4%라는 엄청난 수치를 기록했다. 수입차 10대 중 7대가 디젤 차량인 셈이다.
이런 디젤 인기는 BMW를 비롯해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폴크스바겐 등 독일 메이커가 주도했다. 이들 업체는 상반기 디젤차 판매 상위 10개 모델을 모두 배출해냈다. 자동차 리서치회사 마케팅인사이트가 지난 5년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수입차 구매 시 소비자들은 연비(16%)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디자인과 브랜드는 각각 14.6%, 12.6%로 뒤를 이었다.
일반적으로 디젤은 가솔린 차량보다 연비가 30%가량 좋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디젤 엔진은 압축된 공기를 고압으로 디젤 연료에 분사해 순간적인 마찰로 점화한다. 가솔린 엔진과 달리 불완전 연소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연비효율이 상대적으로 뛰어나다.
그러나 디젤 연료는 대기오염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휘발유보다 이산화탄소나 일산화탄소 배출량은 적지만 오존을 생성하고 스모그 원인이 되는 질소산화물(NOx) 배출량이 많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유럽에서는 디젤차의 수요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현지에서는 차량 가격도 가솔린보다 디젤차가 낮다. 국내 실정과는 정반대인 것이다.
김필수 대림대학 자동차과 교수는 “보통 가솔린 차량을 두고 기술 완성도가 최고 정점에 올라와 있다고 평가한다”며 “우리나라와 달리 세계적으로는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등 친환경차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많이 팔리는 수입 디젤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내구성이 떨어지면서 유지비가 몇 배로 증가하고, 대기오염도 심해 환경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쉐보레 임팔라. 사진=동아오토
국산차 업체의 수입차 의존도는 또 다른 고민거리다. 판매 부진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주장하지만 일시적인 처방에 불과하고 모양새도 좋지 않다. 다음달 한국 판매를 시작하는 준대형급 임팔라는 한국GM이 미국 본사 미시간주 디트로이트공장에서 들여온다. 사실상 수입차인 셈이다. 현대기아자동차 그랜저와 K7 등과 경쟁을 펼치게 될 이 차량은 단숨에 한국GM을 대표하는 모델로 급부상하고 있다.
르노삼성자동차도 스페인에서 직수입한 QM3로 지난해 재미를 톡톡히 봤다. 올해 상반기 1만155대가 팔리며 르노삼성 내수 실적에 엄청난 보탬이 됐다. 이 같은 성공으로 본사 중형세단 탈리스만과 미니밴 에스빠스도 곧 수입할 것이란 얘기가 나오는 상황이다. 르노삼성은 일단 부인한 상태다.
이들 업체는 수입차 전략을 펴면서 일정 수준의 판매량이 확인되면 국내 생산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김 교수는 “수입 판매를 확대하다 보면 해당 업체들은 기술개발(R&D) 기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상황이 이렇다보니 우리나라가 글로벌 자동차회사의 생산기지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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