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용 기자의 죽을 때까지 월급받고 싶다]<43>한은의 ‘뒷북 金투자’에서 배우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7일 03시 00분


타이밍 못 맞춰 거액 손실본 한은… 金매입 진짜 목적은 위험분산용
일반인이 투자하려면 기대 낮추고 운용 가능한 돈의 10%만 매입해야
직접투자보단 예금-펀드가 합리적

홍수용 기자
홍수용 기자
세계경제 중심지 뉴욕에선 한국은행 파견 직원이 기획재정부 파견 직원보다 세다. 3700억 달러가 넘는 보유 외환의 힘 덕분에 뉴욕의 고급정보가 한은 직원에게 먼저 흘러간다. 이렇게 정보에 밝은 한은이 2011년부터 3년 동안 금 90t을 잘못 사서 1조8000억 원의 평가손실을 봤다고 지난달 말 박원석 정의당 의원이 지적했다. 이것이 관심을 끄는 것은 2011년 한때 1온스당 1900달러에 육박하던 금값이 최근 1100달러 선으로 급락하면서 금에 투자하려는 일반인이 크게 늘어서다. ‘한은도 비싸게 산 금을 내가 싸게 사면 얼마나 이익인가’ 하는 심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과연 한은은 실패한 투자가일까. 금 수급 동향을 잘 알고 있었을 한은이 왜 이런 실수를 했을까. 채선병 외자운용원장 등 한은 관계자들에게 물어 당시 금을 산 이유와 투자 철학을 찬찬히 뜯어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투자 타이밍은 나빴다. 하지만 이를 제외하면 개미들이 배울 점이 적지 않다.

우선 타이밍은 한은도 할 말이 없다. 한은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금 모으기 운동 때 수집된 금 3t을 산 뒤 13년 동안 금을 사지 않았다. 그동안 국제 금값은 1온스당 200∼900달러였다. 그러다 2011년 7월부터 2013년 2월까지 금값이 1온스당 1575∼1723달러로 치솟았을 때 한은이 장부가격 기준 47억1000만 달러어치의 금을 샀다. 뒷북 쳤다는 비난을 받을 만하다.

뒷북 투자에서도 배울 점이 있는데 첫 번째는 금을 산 목적이 위험 분산이었다는 점이다. 한은은 금을 위기 때 가치가 빛나는 안전자산이라고 봤다. 생각해보라. 보통 일반인은 금 관련 펀드에 가입할 때 대박을 꿈꾸지 않던가? 금은 원유, 곡물 같은 다른 실물자산에 비해 안정성이 뛰어나다는 게 장점이다. 부도날 염려도 없다. 금 투자에서 대박이 잘 나지 않는 것은 속성상 금은 낮은 수익에 만족해야 하는 안전자산이기 때문이다. 금 투자에 관심이 있다면 일반인도 운용 가능한 돈의 10% 안팎을 조금 성격이 다른 안전자산에 투자하는 게 좋다.

이어 한은 관계자에게 금값이 오른 뒤 뒤늦게 산 이유를 물었더니 “2010년 이전에는 보유 외환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돌이켜보면 한국의 보유 외환은 2001년에야 1000억 달러 선을 넘었다. 2008년 외환위기 때는 보유 외환이 전년보다 600억 달러나 감소하기도 했다. 개인도 ‘금테크’ 한다면서 무리해선 안 된다. 여윳돈으로 투자하라. 지금 금값이 폭락해도 생활비 쓰고 대출이자 갚은 뒤 남는 돈이 적다면 금에 투자하지 말라. 특히 부채가 많아 금리가 오를 때 상환 부담이 크게 늘 수 있다면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가 궁금해 하는 ‘한은은 금을 팔 것인가, 더 살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졌더니 “한은은 금을 매매할 때 중장기적인 시각으로 판단하지 단기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모호한 답을 내놨다.

그 대신 ‘금의 가치가 미국 달러화 가치와 거꾸로 간다’는 명제는 유효하다는 힌트를 줬다.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 금화는 실제 화폐였다. 금은 통화로서의 속성을 갖고 있는 셈이다. 주력 통화인 달러 가치가 높아지면 다른 통화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듯 금 가치도 하락하기 마련이다. 2011∼13년 한은이 금을 매집한 데는 달러 가치가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더 떨어질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당시 판단은 결과적으로 잘못됐지만 다음 달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달러 가치는 지금보다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 당분간 금값도 약세를 보일 것이라는 게 시장의 컨센서스다. 금 전문가들이 대부분 ‘좀더 기다리는 게 낫다’고 하는 건 이런 가격 전망 때문이다.

세계적 투자자 워런 버핏은 금 투자에 부정적이었다. “가만히 앉아 있는 거위(금)를 사는 것보다 계속해서 알을 낳는 거위(주식)를 사는 것이 낫다”고 할 정도였다.

금 실물인 골드바를 사는 것은 가만히 앉아 있는 거위를 사는 셈이다. 부가가치세 10%와 거래수수료 5%를 내야 한다. 골드바를 안전하게 보관하는 데도 별도 비용이 들 것이다. 골드바를 집에 두고 보는 만족감을 즐기려는 일부 자산가를 제외하고는 배당도 없는 골드바에 목돈을 투자하는 건 비합리적이다. 금에 투자한 것과 같은 효과가 나고 수수료도 싼 ‘금 예금’에 들거나 금 관련 기업 주식에 투자하는 ‘금 주식형 펀드’에 분산 투자하는 게 직장인에게는 합리적이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한은#금#위험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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