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소 폐기물이 농업 생산의 ‘보고(寶庫)’가 된다? 얼핏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국내에서도 이와 관련된 신(新)농업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발전소에서 버려지는 온배수(발전 과정에서 배출되는 뜨거운 물) 및 이산화탄소를 농어업 부문에서 활용하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농림축산식품부 등은 이 에너지를 창농(創農·창조농업 및 농촌창업) 및 귀농 가구에 집중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 보물이 된 발전소 열과 이산화탄소
국내에서 발전 온배수를 농업 분야에 공급하는 곳은 남제주화력발전소 한 곳뿐이다. 이곳은 열대성 과일인 애플망고(1.5ha)를 재배하는 농가에 연간 87만6000t의 온배수를 지원한다. 온실을 지나는 온배수가 난방 효과를 내면서 연료비가 기존의 20% 수준까지 줄었다.
정부는 이 같은 성과에 주목하고 올해 3월 온배수열을 신재생에너지 가운데 하나로 인정했다. 5개 국내 발전회사가 지난해 배출한 온배수는 총 286억 t이며, 원전을 포함하면 563억 t에 이른다. 이 중 현재 농어업에 활용하는 것은 1억 t에 불과하다. 정부는 전체 온배수를 열에너지로 활용하면 매년 4300만 t의 석유를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한다.
한국중부발전은 제주가 아닌 육지에서도 온배수열을 농업 분야에 활용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자체적으로 보령화력발전소에 2017년까지 82억 원을 들여 온배수를 농가에 지원하는 ‘에코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발전소 인근에 온실을 만들고 온배수 난방이 어느 정도 효과를 낼 수 있는지 열대 과일을 직접 재배하는 사업이다.
중부발전은 내년부터 보령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도 인근 전북 익산의 한 파프리카 농장에 공급한다. 발전 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설비(10MW급)로 모은 다음 기체 상태로 온실에 뿌려 작물 재배에 활용하는 것이다. 온배수와 이산화탄소 모두 기존 발전소에서는 폐기된다. 중부발전 관계자는 “두 분야 모두 자체 시험을 끝낸 후 농가들에 배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온배수열의 농업 활용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농식품부는 5월에 4곳의 온배수 및 폐열 활용 사업지를 지정했다. 충남 당진(5ha)의 규모가 가장 크고 이어 경남 하동(2ha), 제주(1.6ha), 전남 곡성(1.3ha) 등의 순이다. 정부는 이곳에 젊은 창농인을 유치해 수출 농업단지를 만드는 아이디어도 논의하고 있다. 다만 대규모 열대과일 농장이나 화훼농장이 한꺼번에 들어설 경우 국내 시장가격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어 해당 대책을 고심하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열대과일이나 화훼 재배뿐 아니라 뜨거운 열이 필요한 농업 가공공장까지 입주하면 한국형 수출단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어업 분야도 온배수 활용
어업 분야는 20여 년 전부터 발전 부산물을 물고기 생육에 활용해 왔다. 한국수력원자력은 1995년 전남 영광 한빛원자력발전소의 온배수를 활용해 3000m² 규모의 어패류 양식을 시작했고, 1998년 경북 경주의 월성원자력발전소까지 양식을 확대했다. 고리와 울진 원전도 비슷한 사업을 하고 있다. 발전소가 기른 어패류는 모두 방류한다. 현재까지 어류(849만 마리)와 전복(1689만 마리) 등 총 125억8000만 원어치의 어패류가 방류됐다.
온배수열을 양식업에 사용하면 물고기 경제성이 크게 높아진다. 넙치는 자연 해수에서 100g 안팎까지 자라지만 온배수에서는 600g까지 자란다. 한수원 관계자는 “겨울의 낮은 수온 때문에 양식업의 경제성이 떨어지는 만큼 온배수 어업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방류하는 어패류는 모두 방사능 영향 분석을 시행해 문제가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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