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일에는 본말(本末)이 있다. 본과 말은 각각 나무의 뿌리와 가지 같은 관계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상당 부분 본말이 전도된 현실에서 살고 있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 보자. 시험은 공부의 정도를 측정하기 위해 있는 것이니 공부가 본이고 시험이 말이다. 또 운동을 해서 건강해지면 저절로 아름답게 보이니 건강이 본이고 외모는 말이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말단을 근본인 양 착각한 채 시험점수를 높이기 위해 공부하고 예뻐지기 위해 운동한다.
‘자리’에도 본말이 있다. 어떤 자리에 앉는 것은 그 책임을 맡는 것이 본이고, 권위와 권력은 그 책임 때문에 주어진 부수적 보상이다. 하지만 오늘날 자리를 노리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책임의식은 온데간데없다. 온통 잿밥에만 관심을 쏟는다. 그렇지 않고서야 수많은 사람과 사안을 책임져야 하는 무거운 짐을 어떻게 선뜻, 때로는 무리하게 꿰차려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무거운 ‘자리’에 합당한 사람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무용(武勇)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자로(子路)가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자 공자에게 질문했다. “선생님이 삼군(三軍)을 통솔하게 된다면 제자 중 누구와 함께하시겠습니까?” 공자의 답은 자로의 기대를 크게 벗어났다.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고 맨몸으로 황하를 건너다가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무모한 자와는 함께하지 않을 것이다. 일에 임해서 두려워할 줄 알고, 계획을 잘 세워서 일을 완성할 줄 아는 자와 함께할 것이니라.” 그는 많은 사람의 운명을 맡게 된다는 책임을 강조한 것이다.
자리에 적합한 사람을 가려내는 방법이 하나 있다. 역설적으로, 그 자리 혹은 자기 자신을 버릴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제자들이 서술한 공자의 모습을 기준으로 삼을 만하다. “선생님은 네 가지를 내려놓으셨으니, 자기 의지대로 하려는 것이 없었고,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것도 없었으며, 고집하는 것이 없었고,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도 없었다.” 리더라면 스스로 돌이켜보자. 내가 과연 이 자리에 합당한 사람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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