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 세단은 최근 수년간 한국 자동차 시장의 주요 화두였다. 국내 시장에서 수입차의 경이적인 성장 배경에는 연비 좋고 소음이 개선된 독일산 디젤엔진이 있었다. 2015년 상반기(1∼6월) 기준 수입차 전체 판매량(11만9832대)의 68.4%가 디젤 엔진 차량이었다.
디젤 엔진 경쟁으로 국내 완성차 업계도 한동안 ‘버린 자식’ 취급을 하던 디젤 차량에 대한 기술 개발에 나서면서 신차를 잇달아 내놨다. 올 상반기에 국산차 전체 판매량(89만8396대)의 51.9%도 디젤 엔진을 단 차량이 됐다.
국산차와 수입차 디젤 차량의 승부는 이제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현대·기아자동차가 주력 차종인 신형 쏘나타와 K5의 디젤 모델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다운사이징 엔진을 단 신형 K5 디젤과 수입 중형차 디젤의 대표격인 폴크스바겐의 파사트 2.0TDI (7세대 모델)를 비교 시승해봤다.
다운사이징 모델로 진화
최근 출시된 기아자동차의 신형 K5디젤
업체제공
‘두 개의 얼굴과 다섯 개의 심장.’
기아차는 신형 K5를 출시하면서 이런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다양한 모델을 내놨다. 하지만 승부수를 띄우는 핵심 모델은 1.7L의 디젤 엔진을 2.0차량 크기에 장착한 ‘K5 1.7디젤’이다. 르노삼성 등 다른 국내 완성차 업체에 비해 뒤늦은 감은 있지만 연비에 대한 국내 소비자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운사이징 모델을 내놓은 것이다.
객관적인 스펙에서는 1.7L의 4기통 디젤 엔진을 단 신형 K5가 2.0L의 엔진을 장착한 파사트보다 연비에서 유리하다. 실제 공인 복합연비를 봐도 K5 디젤은 L당 16.8km이고 파사트 디젤은 14.6km다.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 하는 복잡한 시내도로와 일부 고속도로 구간에서 두 개의 차량을 번갈아 타본 결과 실제 연비 역시 신형 K5가 우세했다. K5는 L당 15km의 연비 성능을 보여준 반면 파사트는 13km 수준이었다. 두 차량 모두 에어컨을 켠 상태로 달렸기 때문에 연비는 다소 떨어질 수 있다. 다만 두 차종 모두 수동변속기와 같은 효과가 있는 듀얼 클러치 변속기(DCT 혹은 DSG)를 적용해 연비에 불리한 시내 주행에서도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
신형 K5 디젤의 높은 연비는 엔진 자체의 성능 향상과 함께 7단 DCT를 적용하고 정지상태에서 엔진이 자동으로 꺼지는 시스템인 아이들스톱앤드고(ISG) 기능 등이 복합적으로 개선된 결과로 보인다.
소음 감소는 진일보
디젤 차량의 약점으로 손꼽히는 소음 문제에서 신형 K5는 확실히 진일보했다. 시동을 걸 때 디젤차 특유의 ‘웅∼’ 하는 소리가 상당히 정제된 느낌이다. 디젤 엔진의 고질적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정차 시 소음은 ISG를 적용하면서 상당부분 해결됐다. 현대차가 고급 중형세단을 표방하면서 내놓은 아슬란을 개발하면서 축적된 소음방지 기술도 곳곳에 적용됐다. 차량 전체에 소리와 진동을 흡수하는 흡차음재 면적을 늘리면서 주행 시의 소음도 불편하지 않았다. 파사트 역시 폴크스바겐이 오랜 시간 동안 공을 들여온 디젤 모델인 만큼 소음이 귀에 거슬리지는 않았다. 다만 한국에 수입된 파사트에는 ISG 기능이 없어 정차 시 엔진 소음은 다소 부담스럽다.
독일차와 주행감 비슷
신형 K5 디젤은 1.7 VGT엔진과 7단 DCT를 적용해 최고 출력은 141마력에 최대토크 34.7kg.m다. 파사트는 2.0 TDI 엔진과 6단 DSG를 적용해 최고 출력 140마력에 최대토크는 32.6kg.m다. 객관적인 성능은 비슷한 셈이다.
파사트 디젤의 주행성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검증이 됐다. 파사트의 제로백(시속 100km에 이르는 시간)은 9.1초로 즉각적인 응답성이 뛰어난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일단 속도가 붙으면 느낄 수 있는 경쾌한 가속감은 매력적이다. 독일차 특유의 단단함을 유지하면서 노면의 상태가 그대로 느껴졌다. 하지만 불편하기보다는 오히려 안정감을 준다.
K5 디젤 역시 주행 과정에서 기존의 현대·기아차에서 느껴보기 힘든 단단함이 느껴져 독일차의 주행감과 비슷했다. 변속 타이밍이 빠른 7단 DCT는 가속 과정에서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에코(Eco)와 노멀(Normal) 스포츠(Sport) 등 3개의 주행 모드가 있는 점도 매력적이다. 에코에서 스포츠로 모드를 바꾸면 차체의 반응 차이는 뚜렷해 운전자가 재미를 느낄 수 있다.
8세대 파사트와 정면승부
수입차 디젤차량인 폴크스바겐의 파사트2.0TDI.
업체제공신형 K5 디젤이 완전 변경된 모델인 반면 국내에서 판매되는 파사트 디젤은 아직 7세대로 편의사양 등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그럼에도 신형 K5에는 디지털 장비의 변화가 눈길을 끈다. 스마트폰의 무선충전 시스템을 포함해 동승석 좌석의 위치를 조정할 수 있는 워크인 스위치는 지금까지 대형차 중심으로만 적용돼 온 고급 편의사양이었다. 가격은 파사트 2.0 TDI가 3970만 원이며 K5 디젤은 트림에 따라 2480만∼2920만 원으로 1000만 원가량 차이가 난다.
종합적으로 신형 K5 디젤은 그간 국내 시장을 주름잡던 독일 디젤 차량을 바짝 따라잡으면서 향상된 디자인과 편의사양을 갖췄다. 내년에 국내에 출시될 8세대 파사트가 들어오면 더욱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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