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월 수출액이 월별 기준으로 6년 만에 최대 폭으로 감소했다. 하반기(7∼12월) 들어 수출이 개선될 것으로 봤던 정부의 전망이 무너지면서 3%대 성장률 달성에도 비상이 걸렸다.
산업통상자원부가 1일 발표한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8월 수출액은 393억3000만 달러(약 46조 원)로 전년 동월 대비 14.7% 감소했다. 월간 수출액 감소율로는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직후인 2009년 8월(―20.9%) 이후 최대치다. 수출은 올 1월 감소세로 돌아선 뒤 8개월째 감소 추세다.
국제유가 하락, 선박 인도 지연, 중국 톈진 항만 폭발사고 등 한국의 수출에 ‘트리플 악재’가 겹친 탓이다. 특히 지난해 8월 배럴당 평균 101.94달러였던 두바이유 가격이 지난달 47.76달러로 절반 이하로 떨어지면서 전체 수출의 20%가량을 차지하는 석유제품과 석유화학 품목이 직격탄을 맞았다. 석유제품과 석유화학 품목의 수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각각 40.3%(19억 달러), 25.7%(11억 달러) 줄었다.
국내 정유업계 1위인 SK이노베이션의 경우 지난해 8월 휘발유, 경유, 윤활유 등 석유제품 3900만 배럴을 해외에 팔아 44억2390만 달러를 수출했다. 올 7월에는 4389만 배럴을 수출했지만 수출금액은 지난해 8월보다 오히려 32.9% 줄어든 29억6638만 달러였다. 8월 국제유가가 전달보다 14% 이상 떨어진 것을 감안하면 8월 수출액은 더 줄어든 것으로 추산된다. 유가 하락이 계속될 경우 대규모 재고 손실이 불가피하다.
석유화학업계도 상황은 비슷하다. 범용 석유화학제품인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의 지난달 가격은 지난해 8월보다 27.4% 떨어졌다. 가격이 떨어졌지만 중국 경기 불안 등으로 수출량은 크게 늘지 않고 있다. LG화학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석유화학제품 원료인 나프타 가격 하락 폭보다는 석유화학제품 가격이 적게 내린 상태”라면서도 “중국 경기 둔화로 실적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고 말했다.
저유가는 선박 인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유가 하락으로 석유 시추의 수익성이 낮다고 판단한 해외 원유생산 업체가 드릴십 인도를 연기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조선업계는 11억 달러의 수출대금을 받지 못했다.
중국의 저성장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톈진 항만 폭발사고로 일부 품목의 중국 수출에 차질이 빚어진 점도 수출 부진에 한몫했다.
이 같은 수출 부진은 소비활성화 대책, 추가경정예산 집행으로 경기를 부양하려는 정부의 행보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 등에 붙는 개별소비세가 낮아져 내수가 살아나더라도 수출 부진이 심화되면 3%대 성장률 달성은 힘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공급과잉으로 인한 유가의 추가 하락이나 중국의 경기 둔화 등 대외변수는 한국 정부가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히 없어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수출 이외의 각종 경제지표의 부진도 이어지면서 ‘9월 위기설’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올 6월 말 기준 한국의 총외채는 4206억 달러로 3월 말 대비 17억 달러가 늘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3분기(7∼9월) 이후 이어진 감소세가 4분기 만에 증가세로 전환됐다. 장기외채가 올 1분기(1∼3월)보다 67억 달러 줄었으나 단기외채는 84억 달러 증가했다.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7%에 그치는 등 물가상승률이 9개월째 0%대에 머물면서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에 대한 우려도 지속되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경기침체가 점차 실물경제 위기로 전이되고 있는데 향후 금융시장에 충격이 오면 이런 현상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가 과감하게 정책적으로 대응을 하는 한편, 가계·기업 등 개별 경제주체들이 위험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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