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사무실에서 만난 전자책 업체 리디북스의 배기식 대표(36)는 최근 창업에 나선 이들을 만나면 이렇게 조언한다. 그는 “요즘처럼 인터넷으로 소문이 빨리 퍼지는 세상에서 정말 뛰어난 제품은 하루 만에도 입소문이 퍼져 소비자들이 찾는다”며 “제품이 우선이고 그 다음이 홍보 마케팅과 브랜드”라고 강조했다.
기존 업체가 콘텐츠를 단순히 온라인에서 유통시켰다면 리디북스는 업계 최초로 독자 성향에 따라 책을 추천하는 ‘개인 맞춤형 서비스’와 밑줄을 그어 메모하는 기능, 음성으로 책을 읽어주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현재 리디북스는 180만 명의 회원에게 36만 종의 전자책을 서비스하면서 지난해 2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서울대 전기공학부 출신의 배 대표는 2006년 삼성전자 벤처투자팀에 입사한 뒤 미국 실리콘밸리를 오가며 역동적인 창업 생태계를 목격했다. 이런 경험 덕분에 국내에 스마트폰이 도입되기 이전부터 휴대전화를 이용하면 새로운 창업 기회가 올 것으로 봤다. 그러나 이미 전자책 시장에는 기존 종이책을 불법 스캔한 ‘디지털 암시장’이 존재했다. 기존 출판사들이 모여서 만든 전자책 업체도 있었으니 배 대표가 이른바 ‘퍼스트 무버(초기 진입자)’는 아니었다.
배 대표는 기존 업체와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벤처기업으로서의 성장 비전을 제시하며 우수한 개발자들을 데려왔다. 초기에는 출판사들을 설득해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는 “출판업계와 전혀 인연이 없던 제가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출판사 700여 곳을 돌며 200곳과 협력관계를 이끌어 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배 대표가 무조건 열정만으로 일한 것은 아니다. 그는 “출판사 대부분이 전자책 시장도 기존 오프라인처럼 몇몇 업체가 독점하는 것을 두려워했다”며 “신생 기업이 새로운 유통채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하자 콘텐츠 제공에 동의해 주신 것”이라고 말했다.
리디북스 직원들은 출근하면 전날 올라온 고객의 불만을 검토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배 대표는 항상 직원들에게 “마치 편집증 환자처럼 우리의 서비스를 보면서 움직이는 고객 눈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세세하게 체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실리콘밸리의 자유롭고 화려한 분위기를 동경하는 한국의 젊은 구직자와 창업자에게 ‘쓴소리’도 했다. 배 대표는 “실리콘밸리 직원들이 반바지 입고 개를 데리고 출근해도 회사에서 상관하지 않는 것이나, 높은 복지 수준은 능력이 뛰어난 인재를 잡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겉으로 보이는 실리콘밸리의 문화가 아니라 냉정하고 치열한 분위기를 한국의 창업자들이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배 대표는 “전자책 시장이 커지려면 단말기와 콘텐츠의 궁합이 맞아야 한다”며 “기존에 나온 전용 단말기보다 우수한 제품을 선보이면 전자책 시장도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