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레만 호(湖) 북쪽의 작은 마을 브베에 본사를 둔 네슬레는 연매출 1000억 달러에 육박하는 글로벌 식품회사다. 2011년 미국 포천이 선정한 ‘수익성 높은 세계 기업’ 1위를 차지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나 미국 포브스의 기업 평가에서도 항상 상위권에 오른다. 국토 면적이 세계 136위인 스위스에서 매출의 98%를 해외에서 올리는 네슬레는 국가적 자랑거리다.
농식품 산업은 ‘블루오션’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은 얼마 전 10권의 단행본으로 구성된 ‘스토리 시장경제’를 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한국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려면 기존 대기업 외에 새로운 글로벌 기업이 나와야 한다면서 농식품업과 서비스업을 주목했다. 식품산업을 포함한 농업이 서비스업만큼 유망한 블루오션이라는 견해가 눈에 띄어 그제 전화로 추가 취재를 했다. 최 부원장은 “낙후된 상태로 방치된 한국의 농식품 산업을 시장화, 기업화하면 양질의 일자리와 새로운 소득 창출 기회가 늘어난다”면서 스위스의 네슬레 같은 글로벌 기업이 출현하기를 기대했다.
농식품업의 잠재력을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민관(民官)에서 확산되는 것은 바람직한 변화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창농귀농(創農歸農) 박람회’ 개막식에 참석해 “정보기술과 생명공학, 식품 가공기술을 결합한 농업을 차세대 핵심 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동아일보와 채널A 주최로 사흘간 열린 이번 행사에는 5만여 명의 관람객이 찾았다.
지난해 한국의 농식품 수출액은 61억8640만 달러로 전년보다 8.1% 증가했다. 작년 7월 방한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부인 펑리위안 여사가 구입해 화제가 된 한국 고추장의 대중(對中) 수출은 97% 늘었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와 대한항공이 협력해 항공수출로 바꾼 새송이버섯의 지난해 유럽 수출액도 2년 전의 11.3배인 1048t으로 급증했다.
이런 성과와 혁신은 평가할 만하지만 아쉬움도 남는다. 한국은 세계 2위와 3위의 경제대국인 중국, 일본과 인접해 있다. 특히 중국은 경제성장과 소득증가로 농식품 수요가 급증했지만 자국산의 안전성에 대한 불신이 깊다. 우리가 잘만 하면 수출을 늘릴 여력이 지금보다 훨씬 크다.
미국의 곡물 메이저 입김이 큰 순수 농업에서도 창의력을 발휘하면 소득 증대에 도움이 되겠지만 국가 차원의 경제 효과는 한계가 있다. 나는 한국 경제나 산업의 관점에서 성취의 가능성이 더 높은 분야는 가공식품 쪽이라고 본다. 오리온의 초코파이, 농심의 신라면, 동서식품의 커피, 한국인삼공사의 정관장은 어느 정도 글로벌화에 성공한 브랜드다.
냉정히 말해 오리온, 농심, 동서식품, 남양유업이 네슬레에 버금가는 초대형 기업으로 크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과 기업의 노력이 시너지를 발휘하면 ‘리틀 네슬레’로 성장하는 것은 가능하다. 기업과 브랜드의 해외 경쟁력이 우선 아모레퍼시픽의 화장품인 설화수 수준까지만 높아져도 우리 경제에 상당한 보탬이 된다. 시장화 개혁 절실하다
현재 한국에서는 웬만한 기업의 농업 진출 기회가 사실상 막혀 있다. 시장화, 기업화, 자동화 개혁을 통해 ‘농식품업의 삼성전자’가 탄생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필자도 지방 출신이어서 신토불이(身土不二)의 구호가 심정적으로는 가슴에 와 닿는다. 하지만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기보다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농식품 기업의 등장을 앞당기는 것이 우리 세대와 후손, 궁극적으로는 농촌과 농민들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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