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는 은행권의 반발에 따라 민간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 설립 계획을 포기하는 대신 부실채권(NPL) 처리회사인 연합자산관리(유암코)를 확대해 기업구조조정 업무를 맡기기로 했다. 금융위는 17일 유암코를 통해 기업구조조정 업무를 추진하자는 은행권의 건의를 받아들여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유암코에 대한 매각작업은 중단됐다.
당초 금융위는 채권단 중심의 구조조정이 더딘 의사결정 등으로 인해 한계에 부딪히자 11월경 구조조정전문회사를 출범시켜 시장중심의 새로운 구조조정 모델을 제시한다는 계획이었다. 국민, 신한, 하나, 우리, 기업, 농협, KDB산업, 수출입은행 등 8개 은행이 각각 1200억 원을 출자하고 캠코가 400억 원을 출연해 자본금 1조 원으로 설립할 예정이었으며 필요시 별도로 2조 원을 추가 지원한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설립방안이 발표된 뒤 은행권에서는 자금 부담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은행들의 사정이 제각각인데 균등하게 1200억 원씩을 출자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신설하는 회사가 기존의 유암코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은행권 관계자는 “회사 신설이 코앞에 다가오면서 은행들이 출자에 대한 부담을 실감했다”며 “11일 공청회 이후 일부 은행을 중심으로 회사를 신설하기 보다는 유암코를 통해 구조조정을 진행하자는 아이디어가 제시됐다”고 말했다.
유암코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증한 은행권의 부실채권을 처리하기 위해 설립된 회사다. 신한·국민·하나·기업은행이 17.5%씩 지분을 보유하고 농협·우리은행이 15%씩의 지분을 갖고 있다. 은행이 특정 회사 지분을 15% 이상 보유할 시 자회사로 편입해야 하는 은행법 적용을 피하기 위해 매각이 추진되어 왔지만 회사의 재정상태는 탄탄하다. 2013년 1050억 원, 2014년 574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고 올 6월말 기준 자기자본이 7073억 원에 이르러 당장 은행들이 출자할 필요가 없다.
금융위도 은행권의 제안을 받아들여 유암코를 활용해 기업구조조정에 나서기로 했다. 금융위는 유암코가 이미 구조조정 노하우와 구조조정 인력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회사를 새로 설립하는 것보다 효율적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유암코가 주주은행들로부터 대출받을 수 있는 한도를 현재 5000억 원에서 2조 원으로 확대하는 등 자금동원능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또 산은, 수은도 유암코의 주주로 참여시키기로 했다. 금융위 이명순 구조개선정책관은 “시장 주도의 구조조정 모델을 도입한다는 큰 그림에는 달라진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같은 금융위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금융권은 기본적으로 부실채권을 처리해 수익을 올리던 유암코를 통해 적극적인 구조조정이 가능할지 의구심을 표시하고 있다.
갑작스레 기업구조정전문회사 도입을 철회하게 된 배경을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당국은 11일 구조조정전문회사에 대한 공청회를 진행했다. 14일 국정감사 당시에도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 설립계획을 밝히며 앞으로 민간 주도의 기업 부실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당장 신설회사로는 구조조정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판단한 정부가 은행들의 반발을 유도해 구조조정전문회사 설립을 스스로 포기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유를 떠나 공청회 일주일 만에 금융위가 갑자기 계획을 철회함에 따라 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게 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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