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직업병가족대책위 송창호 대표 “빠른 보상-진정한 사과만 바랄 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23일 03시 00분


보상협의 시작
“반올림, 8년싸움 가족들 요구 외면… 추석 이전 한명이라도 보상 받길”

22일 삼성전자와 백혈병 등 직업병 피해자 및 가족으로 구성된 ‘삼성직업병가족대책위원회’(가대위)가 만났다. 양측이 합의해 이달 초 ‘반도체 백혈병 문제 해결을 위한 보상위원회’를 꾸리고, 18일 피해보상 신청 접수를 시작한 이후 이뤄진 첫 면담이다.

보상 절차에 반대해 온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와 ‘삼성전자 반도체 등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조정위)’는 이날 협의에서 제외됐다. 삼성전자와 가대위 양측은 이날 나흘 동안 접수한 보상신청 건을 공유하고 심사 등 추후 절차에 대해 깊이 있게 논의했다.

이날 면담에 앞서 만난 가대위 송창호 대표(45)의 휴대전화는 인터뷰 내내 울려댔다. 보상 접수를 시작한다는 소식이 알려진 직후부터 “나도 보상 대상자가 되느냐”고 묻는 전화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송 대표는 “현재까지 나를 포함한 가대위 소속 피해자 및 가족 5명 외에 10명의 피해자가 가대위로 보상 신청을 했다”며 “오늘부터 심사를 시작해 이르면 추석 명절 전 한 명이라도 보상 소식을 들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1993년부터 1998년까지 삼성전자 온양 반도체 공장 후공정 라인에서 근무했던 송 대표는 2007년 악성림프종이 발병했다. 그는 항암치료를 받던 2008년부터 반올림에 가입해 활동했다.

송 대표는 “반올림이 처음 꾸려졌을 때만 해도 내세웠던 문구가 ‘빠른 보상과 사과’였다”며 “하지만 점점 논의가 이뤄질수록 변호사, 노무사 등으로 구성된 반올림 활동가들이 삼성 내에 노조를 꾸려야 한다는 등 무리한 요구들을 내놨다”고 했다. 그땐 의아했지만 ‘원래 목표는 그렇게 높게 잡는 거’라는 말에 가족들도 믿고 따라갔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본질과 거리가 먼 반올림 활동가들의 요구 때문에 협상은 자꾸 산으로 갔다. 협력사 직원들처럼 논의 자체에서 배제돼 있는 피해자들도 보상 범위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반올림이 아닌 가족들이 먼저 꺼냈다.

송 대표는 “활동가들은 모르는, 피해자와 가족들만 서로 느끼는 절실함과 끈끈한 유대감이 있다”며 “반올림이나 조정위는 보상 자체보다는 삼성전자가 내놓을 1000억 원으로 재단을 꾸리는 데 더 의미를 두다 보니 이런 가족들의 요구를 잘 몰라줬다”고 했다. 지난해 가대위가 갈등 끝에 반올림에서 분리돼 나온 이유다. 재단을 꾸려 보상 절차를 논의하라는 조정위의 권고안을 따라가다가는 또 수년의 세월이 걸릴 것 같았다고 했다. 현재 송 씨는 가대위에 소속된 유가족 6명을 대표하고 있다. 반올림은 활동가 4명과 유가족 2명으로 구성돼 있다.

그는 “반올림을 믿었다가, 조정위를 믿었다가 이제는 그동안 ‘적’이라고 생각해 왔던 삼성전자를 믿고 논의하고 있으니 상황이 우습기도 하다”며 “하지만 삼성전자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우리가 처음부터 바랐던 목표였던 ‘빠른 보상과 진정한 사과’를 받고 싶다”고 했다.

8년 만에야 이제 끝이 보이는 것 같다는 그는 보상 절차가 끝나더라도 가대위는 해체되지 않고 추가 피해자들을 찾고, 삼성전자가 기부할 1000억 원이 잘 사용되는지 점검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가대위가 자칫 제2의 반올림이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송 대표는 “특정 시민단체와 결코 연계하지 않고 피해자와 가족들을 안내하는 역할만 하겠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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