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3대 우동 ‘이나니와 요스케’ 한국 첫 상륙
청춘의 열정으로 끓인 ‘정통 우동’ 한국 입맛에 딱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면서 벌써 따끈한 음식이 간절해진다. 가을은 면이 점점 맛있어지는 계절. 높은 온도와 습도 탓에 반죽이 쉬 물러지는 여름보다 날씨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이다. 면 요리사들은 반죽 상태가 나아진 것을 보고 가을이 왔음을 실감한다. 일본식 우동 전문점이 늘고 있는 가운데, 올봄 일본 3대 우동으로 유명한 아키타(秋田) 현의 ‘이나니와 우동(稻庭うどん)’이 한국에 상륙했다. 올해 6월 서울지하철 1·2호선 시청역 인근에 터를 잡은 일본 음식전문점 ‘이나니와 요스케’가 그곳이다. 일본 이나니와 우동의 국내 첫 점포. 1호점의 명분에 걸맞게 이나니와 우동 고유의 진면모를 유감없이 살려내고 있다.
노벨상을 꿈꾸던 과학도, 우동가게 차린 사연
350년 전통의 이나니와 우동은 가가와(香川) 현의 사누키 우동, 군마(群馬) 현의 미즈사와 우동과 함께 일본 3대 우동으로 유명하다. 이나니와 우동은 전통 수타 건(乾)우동으로 ‘우동 면발은 통통하다’는 선입견을 깨고 가늘면서도 쫄깃한 맛으로 일본 전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에도시대 초기에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니 그 세월이 까마득하다.
이나니와는 1860년 창업 이래 자손이 ‘사토 요스케(佐藤養助)’라는 이름으로 7대째 한자리에서 대물림해 영업 중이다. 국수 제조 전 과정은 창업 당시와 변함없이 모두 수제 방식을 고집한다. 이나니와 우동의 특징은 반투명하면서 얇고 쫄깃하며 매끈한 면발에 있다. 그 때문에 식감이 특별하고 목 넘김이 좋다. 꽈리를 튼 탱탱한 우동 면에 다시마와 가쓰오부시 국물을 베이스로 한 쓰유(간장 소스)와 참깨미소 쓰유 두 가지가 디핑소스로 제공된다.
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이나니와 요스케 1호점. 박병진 대표는 원래 실험실에서 연구에 몰두하던 과학도였다. 일본 문부성 국비장학생으로 도호쿠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모두 마쳤다.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자가 돼 세계를 누비고 싶다는 꿈을 안고 학업에 매진했다. 매 학기 수석을 놓치지 않은 것은 물론 그의 연구 실적과 논문이 지금도 다른 연구원들에게 지침이 되고 있다. 현재까지 22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에서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한국인 연구원’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이력이 이를 증명한다.
촉망받는 과학자였던 박 대표가 ‘우동가게 주인’으로 변신한 것은 단순히 돈을 버는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일본에서 귀국 후 생명공학과 관련한 무역회사를 창업해 큰 성공을 거뒀다. 일본 대기업과 300만 달러 규모의 첫 거래를 성사시키며 화제도 됐었다. 그런 그가 찬바람이 몰아치는 외식 창업 현장에 뛰어든 것은 일본 유학 시절 찾았던 한 우동가게에서 경험했던 강렬한 감동을 한국에도 퍼뜨리고 싶다는 이유가 컸다. 박 대표는 일본 유학 시절 아키타 현의 외곽에서 7대, 350년을 이어 영업하고 있는 사토 요스케 우동가게를 찾아서 우동을 먹었다. 그때의 경험은 큰 충격이었다. 맛과 정취, 분위기까지 수 세기를 이어오는 장인정신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돈은 무역업으로 벌면 됩니다. 제가 이나니와 요스케를 오픈한 것은 한국 사람들에게 일본 우동 정통의 맛을 알려주고 싶었고, 한국에서 공부하는 일본 유학생들에게 고향의 향수를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입니다.”
45년 경력의 前 일본요리협회장 ‘타카하시’ 주방장
박 대표가 수많은 대기업의 제안에도 꿈쩍 않던 사토 요스케의 한국 지사를 오픈할 수 있었던 것은 기묘한 인연이 있어서다. 몇 해 전 일본 본사 앞에서 우연히 만난 젊은 남자가 박 대표에게 한국에 가게를 오픈하려는 이유를 물었다. 박 대표는 그 질문에 “경험이 없으면 어떻습니까? 이나니와 우동을 좋아하고 고국에 가서 그 맛을 알려주고 싶을 뿐입니다. 사토 요스케는 아키타 현에 있는 10여 개의 이나니와 우동 매장 중에서도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니까요”라고 답했다. 알고 보니 그 젊은이가 바로 사토 요스케의 7대째 사장이었다. 홍콩과 대만에 있는 분점을 대기업에 내줬던 사토 요스케지만, 결국 한국 젊은이의 호기에 끌려 지점을 허락했다.
이후 이나니와 요스케는 전(前) 일본요리협회장을 지낸 45년 경력의 타카하시 타케후미 주방장을 섭외하는 데 성공하면서 본토의 맛을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타카하시 주방장은 한국 호텔에서 근무한 경력만 20년이 넘은 일식요리의 대가. 그가 직접 만드는 70가지 이상의 일본 정통 요리는 일식 마니아들에게 극찬을 받고 있다. 소바처럼 시원한 쓰유에 찍어 먹을 수 있는 냉우동은 물론 다양한 일본 요리와 코스요리를 제공한다. 특히 그가 만드는 가이세키 요리는 정통 일식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메뉴로, 주변 대사관이나 대기업에 입소문이 나 예약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나니와 요스케에서는 요리와 더불어 일본의 각 지역을 대표하는 다양한 술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정통 ‘자가제면(自家製麵)’…야채 하나까지 日서 공수
이나니와 요스케는 대량으로 생산할 수 없는 ‘자가제면(自家製麵)’이 강점이다. 우동면의 재료 선정부터 출하 전 검품에 이르기까지 모두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반죽할 때 비비고 꼬는 방식을 반복해 면발이 쫄깃하고 가늘며 납작한 것이 특징이다. 반죽부터 숙성까지 우동 한 가닥을 만드는 데 무려 일주일이나 걸린다. 또 숙성고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해 날씨의 영향을 최대한 덜 받게 함으로써 언제나 최상의 맛을 유지한다. 쫄깃한 식감은 일본의 3대 우동 중에서도 최상이란 평가다. 매끈한 면은 입에 들어가면 마치 춤을 추는 듯 변화무쌍하고 미묘한 면발의 진수를 보여준다. 점심 한정메뉴는 매주 메뉴가 바뀌며 저녁에는 주방장과 요리사들이 상의해 그날그날 추천 메뉴가 달라진다. 매장 내에는 좌석 외에도 일본 전통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넓은 다다미방도 갖추고 있어 특별한 회식자리를 가질 수 있다. 인천 송도 센트럴파크에도 10월 초에 매장문을 연다.
“이나니와 요스케를 오픈한 동기가 ‘나눔을 위한’ 가게이기 때문에 무리하게 가맹사업을 펼치지 않을 겁니다. 직영점을 확장해서 유학생들에게 더욱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그 맛도 지켜낼 것입니다. 적자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돈보다는 맛을 지키는 장인이고 싶습니다.”
맛의 정통성을 이어 나가기 위해 물을 제외한 모든 재료를 일본에서 공수해 오는 것도 특징이다. 음식은 섬세함이 요구되는 만큼 일본 본점과 동일한 맛을 내기 위해 야채 하나까지 꼼꼼히 체크하고 검수한다. 직영점의 모든 음식을 다카하시 조리장이 책임지고 있는 만큼 관리 차원에서도 프랜차이즈 자체가 불가능하다.
일본 현지에서 우동 값은 대체로 저렴한 편이지만, 이나니와 우동은 가격이 비싸기로 유명하다. 박 대표는 한국 사람들과 유학생들이 부담 없이 우동의 맛을 즐길 수 있도록 우동 가격을 일본 본점의 50% 수준으로 책정했다. 매장 내에서는 우동 면과 쓰유도 별도로 판매하고 있는데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높다.
창업한 지 이제 넉 달. 박 대표는 “소박한 우동이지만 미약하게나마 일본 정통의 맛을 한국 사회에 전파하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며 “점점 인스턴트화되는 게 현대인들의 입맛이지만 어떤 맛이 진짜 최고인지를 누리고 즐길 기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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