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다보스포럼’으로 더 잘 알려진 스위스의 비영리단체 세계경제포럼(WEF)이 올해도 어김없이 한국의 금융당국을 발칵 뒤집어놨습니다. 이 단체가 30일 발표한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의 ‘금융시장 성숙도’가 세계 87위로 작년(80위)보다도 7계단 하락했기 때문입니다. 순위 표만 놓고 보자면 한국 금융은 부탄(86위), 우간다(81위), 가나(76위)보다도 경쟁력이 낮았습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긴 걸까요. 오랜 관치금융과 은행권의 보신주의 등을 생각해보면 한국 금융이 아주 우수한 성적표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쯤은 짐작이 갑니다. 그래도 부탄이나 우간다보다 못하다는 건 조금 과하다 싶습니다.
여기엔 조사의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WEF의 경쟁력 조사는 총점의 90%가량을 자국 기업인의 주관적 만족도로 평가합니다. 국내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에게 “한국 금융의 점수를 매겨 달라”고 하는 식이죠. 요즘 아무리 달라지려 노력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갑(甲)의 위치에 있는 금융회사들을 기업인들이 곱게 볼 리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금융서비스 이용 가능성’(99위), ‘대출 용이성’(119위), ‘은행 건전성’(113위) 같은 세부 항목의 점수가 바닥을 헤맸습니다. 만약 “우간다와 비교했을 때 한국 금융의 경쟁력이 어떠냐”고 물었다면 순위가 많이 달라져 있었을 겁니다.
정부는 부글부글 끓고 있습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한숨을 크게 내쉬면서 즉시 ‘설명 자료’를 뿌리라고 지시했습니다.
금융위는 자료에서 “한국은 시가총액 수준, 은행 지점 수 등 여러 지표가 아프리카보다 월등히 양호하다”며 “WEF 조사는 국가별로 객관적인 비교를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간 여러 차례 WEF 조사 결과를 인용하면서 우리 금융업을 질타해왔기 때문에 금융개혁에 매진하는 정부로서는 더 예민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정부가 반성할 부분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순위야 어떻든 간에 우리 기업인들의 금융업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는 것은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또 성적이 좋았을 때는 정부의 치적이라 홍보해놓고 막상 순위가 떨어지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조사의 공신력을 깎아내리는 것도 이중적 태도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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