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상품, 사후보고제로 전환… 가격규제 없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일 03시 00분


금융위, 경쟁력 강화방안 공개

가격과 보장 내용 등이 획일적인 국내 보험 상품들을 다양화하기 위해 금융당국이 관련 규제를 대폭 풀기로 했다. 정부가 보험 상품의 가격 규제를 걷어내는 것은 보험업 자유화 방안이 추진되다가 사실상 무산됐던 1993년 이후 22년 만의 일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1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달 금융개혁회의에서 논의할 보험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의 초안을 공개했다.

이 방안에 따르면 보험사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표준약관 제도가 1, 2년의 유예 기간을 거쳐 단계적으로 폐지된다. 표준약관은 금융감독원이 생명 손해 자동차 실손의료 등 10가지 보험 상품군(群)별로 작성한 것으로 계약자의 권리와 책임, 보험료 납입 및 보험금 지급 절차, 보장 내용 등의 세세한 내용이 담겨 있다.

지금까지 보험사들은 일부 숫자만 바꿨을 뿐 이 표준약관에 맞춰 대부분의 상품을 설계해왔기 때문에 아무리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미하려 해도 ‘붕어빵’ 보험 상품이 양산될 수밖에 없었다. 금융당국은 이 표준약관을 2018년 초까지 단계적으로 없앨 방침이다. 또 보험상품의 ‘사전 인가제’를 원칙적으로 폐지하고 ‘사후 보고제’로 전환할 예정이다.

이 밖에 금융당국은 해외 선진국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든 보험 상품의 가격 통제 장치도 전면 재정비하기로 했다. 보험료 산정과 지급에 적용하는 이자율(표준이율, 공시이율) 등 관련 규제를 없애 보험료가 다양한 상품들이 동시에 출현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또 많은 상품을 소비자들이 한눈에 비교할 수 있도록 네이버, 다음 등 주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생명·손해보험협회의 상품 가격 정보를 공개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검색 창에 보험 상품을 입력하면 가전제품처럼 유사 상품의 비교 정보를 바로 볼 수 있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의 이번 방안은 국내 보험산업이 지금까지 양적 발전은 이뤘지만 촘촘한 규제로 인해 질적 성장은 한계에 부닥쳤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보험사들이 규제의 틀 안에서 ‘나눠 먹기식 영업’을 하다 보니 10년 전의 시장점유율 순위가 거의 그대로 유지되는 등 시장의 역동성이 크게 떨어져 있다. 임 위원장은 “제 민간에서의 경험(NH농협금융 회장)을 얘기하자면 은행 보험 증권 부문이 모여 회의를 할 때 보험 쪽은 규제에 묶여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며 “결국엔 누가 혁신적인 상품을 만드느냐가 아니라 누가 똑같은 상품을 많이 파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상품이 다 똑같다 보니 소비자 입장에서도 보험은 그냥 아는 사람이 파는 걸 들어주면 되는 거지, 꼼꼼히 비교해보고 쇼핑할 여지가 없었다”며 “외국에서도 보험사의 경쟁을 유도함으로써 소비자의 만족도가 높아진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이와 함께 온라인에서 보험을 가입할 때는 1, 2장 분량의 간단한 서류로 가입 절차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고, 실손의료보험 등 소액 보험금 청구가 많은 상품은 스마트폰 등을 이용해 지급 절차를 간소화하기로 했다. 금융위는 이달 금융개혁회의를 거쳐 보험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확정하고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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