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뷰스]기업-출연硏 협력이 경쟁력 핵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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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천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이상천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미래학자 피터 디어맨디스는 첨단기술이 수십 년 안에 국가 경계의 개념을 용해시킬 것으로 내다봤다. 이른바 글로벌 시민론이다. 그는 텔레프레즌스 기술로 지구촌 곳곳을 화상으로 연결하고 가상현실 속에서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예를 근거로 들었다. 디지털 통화로 외환이나 은행을 거치지 않고도 무역이 가능해진 사례도 들었다.

이토록 눈부신 기술의 변화 앞에서 개별 기업 역량만으로는 혁신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 소비자 요구는 높아지고, 이를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기술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는 까닭이다.

이 때문에 개방형 혁신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내부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대기업들까지 가세하면서 개방형 혁신이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소비재 기업인 P&G는 2000년 초 ‘혁신의 절반은 외부에서 가져온다’는 방향 전환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 P&G의 연계개발(C&D) 전략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옷감 손상 없는 세제 타이드 토털케어의 경우도 스웨덴 룬드대와의 공동연구 성과에 기반을 둔 것이다.

국내 정부 출연연구기관(출연연)도 기업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방형 혁신을 추진하고 있어 지각변동이 예고된다. 일단 기술을 개발하고 쓰임새를 찾던 기존 방식과 달리 시작부터 기업이 필요로 하는 연구를 수행하겠다는 전략이다. 기업이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출연연이 창출하고, 그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민간수탁 수주를 확대하는 선순환 구조를 정착하는 것이 목표다.

이런 변화는 출연연의 연구 성과와 산업계의 수요가 ‘따로 놀고 있다’라는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출연연의 기술 실용화가 더딘 이유를 과제 기획단계에서부터 시장성을 고려하지 않은 현실에서 찾은 것이다. 처음부터 시장을 잘 알고 있는 기업이 요구하는 기술을 개발하면 기술 실용화 비율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정부도 민간수탁 실적을 토대로 인센티브를 부여할 수 있도록 국내 실정에 맞는 민간수탁 활성화 지원 제도를 만들기로 했다. 민간수탁 실적이 좋으면 안정적 재원인 출연금을 늘려주고, 나쁘면 페널티를 적용하는 방식이다. 적용 대상은 우선 산업기술연구 중심기관인 전자통신연구원(ETRI), 생산기술연구원, 전기연구원, 화학연구원, 기계연구원, 재료연구원 등 6개 기관이다. 정부는 현재 14%에 머물고 있는 이들 기관의 민간수탁 비율을 2018년까지 21%로 끌어올릴 계획을 갖고 있다.

일부에서는 산업계 연구개발(R&D)과의 밀착을 강조하는 연구소 운영 방식이 시기상조라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연구기관의 체질 전환은 글로벌 시대 연구 생산성과 산업계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더욱이 국가 간, 기업 간 경쟁구도가 세계를 상대로 한 생태계 간 경쟁으로 변화하면서 융복합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결국 자신의 생태계에 다양한 협력자를 확보하는 것이 승패를 가르는 기준이 되는 만큼 연구개발 혁신의 두 핵심 주체인 출연연과 기업 간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산업계와 정부 연구원 협력의 모범으로 꼽히는 독일 프라운호퍼 연구소처럼 연구가 산업을 뒷받침해야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이제는 우리도 산연 협력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 할 때다.

이상천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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