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기업 인수합병(M&A)의 주요 실패 원인 중 하나로 과다한 인수 대금이 꼽힌다. 굳이 학문적으로 입증하지 않더라도 실제 우리 주변에서 ‘승자의 저주’로 불리는 사례를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쉽다. 이와 관련해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소더경영대학원의 모리스 레비 교수팀은 인수합병 시 과다한 인수 대금 지급 결정이 성별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살펴보는 연구를 했다.
레비 교수팀은 1997년부터 2009년 사이에 S&P1500지수에 속한 기업들의 이사회와 이들이 내린 인수합병 결정을 샘플로 삼았다. 그 결과, S&P1500 기업들에서 인수합병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이사회의 규모는 평균 10명 정도인데, 이 중 여성 이사의 참여 비율은 평균 10%를 약간 밑도는 것으로 조사됐다.
주목할 점은 이사회 성비가 인수합병 결정에 미치는 영향이다. 이사회에 여성 이사의 수가 많을수록 인수합병의 제안 빈도가 감소했다. 기업의 이사회에 여성 이사가 1명 증가할 때마다 인수합병 제안 건수는 7.6%씩 감소했다. 이는 여성 이사가 전무한 이사회일 경우 100건이던 인수합병 제안이 여성 이사 1명의 참여로 인해 92.4건이 된다는 의미다.
더욱 눈여겨볼 대목은 여성 이사 비율이 인수대금 결정에 미치는 영향이다. 이사회에 여성 이사 1명이 추가로 참여할 때마다 인수합병 프리미엄은 15.4% 감소했다. 이는 1명의 여성 이사가 1000억 원의 프리미엄을 846억 원으로 낮추도록 유도한다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이사회 구성의 성별 다양화는 신중한 인수합병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특히 여성 이사는 남성 이사보다 기업 감시 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이사회 안건에 대해 남성보다 훨씬 심사숙고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최고경영자의 경영 스타일에도 영향을 미쳐 보다 신중하게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의사 결정을 내리도록 유도한다. 결국 여성 이사의 존재는 궁극적으로 주주 권익 향상에도 기여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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