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에서 여야가 “우리는 왜 노벨상을 못 받느냐”고 정부를 추궁한 건 코미디다. 일본과 한국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 실적이 ‘21 대 0’이고, 그래서 해마다 10월이면 찾아오는 노벨상 콤플렉스가 더 깊어졌다고 해도 국회가 막무가내로 추궁할 사안은 아니다. 그 자리에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한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의 답변 역시 코미디다.
일본은 과학 분야에 5년간 230조 원을 쏟아부어 2050년까지 노벨상 수상자 30명을 내겠다고 했다. 이는 한국보다 경제규모가 4배나 크고 일찍부터 기초과학에 투자했기 때문이어서 가능하다. 기초과학, 물론 중요하다. 그런데 기초과학 잘해서 노벨상 받는다고 해서 반드시 국민 살림살이가 나아지거나 청년 실업이 해소되는 건 아니다. 헝가리는 7명이 화학상과 물리학상, 생리의학상을 받았지만 우리가 역할모델로 삼을 만한 나라라고는 할 수 없다. 핀란드는 지금까지 노벨화학상과 생리의학상에서 한 명씩의 수상자밖에 배출하지 못했지만 국가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은 1962년 제1차 경제개발계획을 내놓을 때부터 ‘패스트 팔로어’ 전략을 추구했다. 모방을 통한 획일적인 대량생산 체제를 도입해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 기초과학보다는 실용화 기술을 획득하는 데 방점을 뒀다. 이런 나라가 갑자기 노벨상 운운하면 영화 베테랑에서 서도철이 한 말처럼 ‘가오’ 잡자는 얘기와 진배없다. 그래서 국감장의 질의응답이 코미디라는 거다.
한국은 노무현 정부 때 기초과학에 무게를 둔 적이 있지만 이명박 정부 이후부터는 다시 실용화 기술로 돌아섰다. 박근혜 정부도 과학 분야에선 이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현 정부의 모토인 창조경제는 기초물리학을 열심히 하자는 게 아니다. 창의성을 바탕으로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해 새 부가가치를 창출하자는 것이다. 모방 대신 창조를, 획일성 대신 다양성을, 대량생산 대신 맞춤 생산을 하자는 얘기다. 기존에 우리가 강점을 보여 온 산업군의 글로벌 생태계가 바뀌고 있음을 감안하면 방향 자체는 크게 틀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노벨상을 못 따는 것보다 더 고민해야 하는 게 바로 이 대목이다. 전국에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설치했지만 아직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확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기술 간 융합이라는 것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개발이나 기존 산업에 ICT를 결합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창의성의 부재 때문에 창조경제라는 그림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 것 같다. 정부는 페이스북을 창업한 마크 저커버그 같은 사람이 나오길 기대한다. 하지만 이어령 선생의 지적처럼 “‘저커버그 나와라’ 한다고 해서 저커버그가 생겨날 순 없다”. 창의적인 교육과 산업 풍토가 보장돼야 저커버그형 인간이 양성될 텐데 정부는 ‘창의성을 바탕으로…’라고 말할 뿐이다.
지난달 초등학교 3학년 딸이 교내 체육대회 때문에 매일 매스게임 연습을 하고 돌아왔다. 아이는 체육대회를 한다면서 왜 매스게임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했고, 선생님이 앞에서 봤을 때 뒷사람의 머리가 보이지 않도록 칼같이 줄을 맞춰야 하는 게 너무 고역이라고 했다. 한 세대 전과 전혀 달라진 게 없는 이런 환경에선 창의성이나 창조를 거론하기 어렵다. 하기야 정부가 나서서 역사를 국정교과서로만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나라다.
노벨상보다 차라리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 도전을 격려하자. 이그노벨상은 논문으로 발표된 과학적 업적 중에 재밌거나 엉뚱한 것을 선정한다. 올해 수상작인 ‘포유류가 방광을 비우는 데 걸리는 시간은 21초임을 증명한 연구’ ‘닭에게 인공 꼬리를 달면 걸음걸이가 공룡과 비슷해진다는 연구’는 제목만 들어도 관습과 생각의 족쇄를 시원하게 날려버리는 것 같다. 창조경제 시대의 근간을 탄탄하게 하는 건 이런 자유분방함과 호기심, 창의성이다. 참고로 이그노벨상 수상자 중에는 나중에 진짜 노벨상을 받은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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