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완의 사랑의 생명, 시새움의 집요함은 죽음과 무수한 욕망의 부정, 허다한 의심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그 대상은 다 오데트였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마르셀 프루스트·국일미디어·2011년) 》
우리는 사랑을 시작하거나 결혼을 하면서 저마다 ‘천생연분’이란 단어로 의미와 정당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모든 사랑은 하늘이 내려 주었을까. 이에 대해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아니다’라고 답한다. 프루스트의 걸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방대한 분량에다 프루스트 특유의 만연체 그리고 의식의 흐름대로 써져 줄거리가 명확지 않기 때문에 읽기 힘든 대표적인 소설로 꼽힌다. 하지만 ‘스완의 사랑’ 편은 연정 사건을 다뤄 재미도 있고 어느 정도 줄거리도 있어 따로 떼어서도 많이 읽힌다.
여기에 등장하는 바람둥이 스완은 프랑스 파리의 귀부인들을 쥐락펴락하는 최고급 사교계 인사다. 그는 어느 날 극장에서 오데트란 화류계 여성을 소개받게 되는데 스완은 오데트의 첫 인상에 대해 광대뼈가 너무 튀어나왔고 옆얼굴이 너무 날카롭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자신이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연애 선수였던 오데트는 스완의 예술 컬렉션을 보고 싶다는 것을 핑계로 계속 찾아간다. 스완은 처음에 재미만 보겠다는 생각으로 오데트를 만난다.
하지만 우연히 스완에게 사랑의 불씨가 지펴진다. 그는 보티첼리의 그림에 나온 여성이 오데트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점, 자신이 좋아하는 소곡을 함께 들었다는 우연성 때문에 점차 오데트를 운명의 여성으로 생각하게 된다. 스완이 사랑의 올가미에 걸려들었다고 판단한 오데트는 그때부터 스완을 초조하게 만든다. 스완이 처음에 가졌던 사랑의 환희는 점차 집착과 의심으로 바뀌고 급기야는 사랑의 갑을 관계가 역전된다. 오데트의 바람기와 추문 때문에 신경쇠약까지 걸린 스완은 우연히 꾸게 된 꿈을 통해 오데트에 대한 사랑은 필연이 아닌 우연에 의해 촉발됐고 결국은 집착으로 변해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운명이라 생각된 사랑이 단순히 우연에 의해 시작되고 발전됐다는 것을 보여 준 프루스트의 통찰력은 우리에게 사랑이란 감정이 내포하고 있는 허무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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