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 A 과장은 올해 국감 시즌에 유난히 표정이 어두웠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종합국감 실무준비를 맡았던 그는 “힘이 쭉 빠진다”고 했다. “철밥통이다, 무능력하다 등 온갖 소리를 다 들어봤지만 ‘매국’이란 말은 처음이었다. 그런 말까지 들을 정도로 우리가 잘못하고 있는지 자괴감이 들었다.”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이 6일 국감 질의 과정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을 상대로 “기재부가 지난 3년간 꾸준히 중소기업 지원을 막는 바람에 외국 기업인 롯데가 100% 과실을 독점했다. ‘매국행위’ 아니냐”고 따져 물은 것을 두고 한 말이었다. 당시 발언을 놓고 여당과 야당, 야당과 기재부 간 설전이 벌어졌다. 옥신각신하던 상황은 정희수 기재위원장의 중재로 간신히 수습됐다.
문제가 된 법안은 2012년에 이어 2013년 홍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가 국회 계류 중인 ‘관세법 일부개정 법률안’이다. 전체 면세점 사업장의 50%만 대기업 및 중견기업에 허용하고 중소기업에 30%, 관광공사와 지방공기업에 20%를 할당하자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중소기업 면세점 매장을 늘리자는 취지는 나쁘지 않다. 호텔롯데의 면세사업부가 지난해 올린 매출은 호텔롯데 전체 매출(4조7165억 원)의 83.7%(3조9494억 원)나 된다. 면세사업부의 영업이익은 전체의 96.1%다. 한마디로 알짜 사업이다. 이런 사업에 중소기업이 참여할 기회를 넓힌다는 건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대기업 몫을 딱 절반으로 제한하면 부작용이 큰 것도 사실이다. 시내 및 공항 면세점의 대기업 매장을 합하면 전체 면적의 80%를 훌쩍 넘기 때문에 50% 기준을 맞추려면 당장 30%포인트 이상 줄여야 한다. 또 이 공간을 차지한 중소기업은 해외에서 물건을 들여올 때 대기업보다 ‘바잉 파워’가 떨어지기 때문에 비싼 가격으로 물품을 구입할 수밖에 없다. 이는 국내 면세점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초기 투자비용이 큰 면세점은 진입제한보다는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는 영역”이라며 “컨소시엄 등으로 파이를 키운 중소기업이 참여한다면 모를까 굳이 할당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홍 의원이 이날 국감에서 자신이 제출한 법안의 구체적 내용을 밝히고 기재부와 치열하게 논쟁을 벌였으면 어땠을까. 양쪽의 주장이 생중계됐다면 누구의 말이 더 설득력 있는지 국민이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이런 과정이 생략된 채 ‘매국행위’라는 비난만 부각됐고, 결과적으로 정치공방만 이어졌다.
더구나 중소기업에 면세점을 일정 부분 할당하지 않는 일이 ‘나라를 팔아먹는 행위’일까. 형제간 내홍을 겪고 있는 롯데를 외국 기업이라고 부르는 것은 합당할까. 기재부 관료 대부분은 “나라를 팔아먹기 위해 최근 몇 달간 밤을 새워 가며 세제 개편안을 마련하고 예산안을 편성한 뒤 국감까지 준비한 것은 아니다”라며 한숨을 내쉰다. 비판은 받는 사람이 수긍하는 면이 있어야 아프고, 효과가 있다. 호통과 막말, 수준 이하의 질문 등 국감장에서 보인 의원들의 민낯이 오히려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진짜 매국행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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