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히 수출의 역(逆)주행이라고 할 만하다. 외환위기, 금융위기 같은 큰 고비 때마다 집안을 홀로 지킨 든든한 기둥이었던 수출이 성장률을 끌어내리고 있으니 그간의 효자 노릇도 빛이 바래고 있다.
과거 세계경제 성장률보다 2배 이상 빠른 성장세를 보이던 세계무역은 구조적 저성장 기조를 보이는 세계경제에 뒷덜미를 잡히고 중국의 활약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중국이 성장의 브레이크를 세게 밟으면서 한국의 중간재, 자본재 수출이 흔들리고 있고, 자원 수출국 경제도 하나둘 주저앉고 있다.
산업혁신의 물결도 거세다. 자동차산업은 내연기관에서 스마트차, 전기차, 수소차로 넘어가는 과도기이고 조선, 철강, 석유화학은 세계적인 공급 과잉의 물살에 떠밀려 가고 있다. 아마존, 알리바바, 페이스북처럼 인터넷에 기반을 둔 기업이 새로운 시장 질서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경제와 산업은 한마디로 심각하다. 많은 기업들이 고환율과 저리로 쉽게 돈을 번 탓에 여기저기 군살이 끼고 행동이 민첩하지 못하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더이상 견디기 힘든 상황이다. 영업이익으로는 이자도 못 갚는 ‘좀비기업’도 등장했다. 해외로 나간 기업이 늘면서, 우리 상표를 붙였지만 자동차의 40%, 냉장고의 79%, TV의 97%는 더이상 ‘메이드 인 코리아’가 아니다.
이제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1970, 80년대식 성공 방정식을 떨쳐내야 한다. 고투입-고성장의 ‘구조적 관성(structural inertia)’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수출과 무역을 양이 아닌 질로, 가치 창출을 통한 경제성장에의 기여와 고용 창출 능력에서 바라봐야 한다.
부가가치의 원천에 주목해야 한다. 오늘날 글로벌 밸류 체인(Value Chain)이 복잡해지면서 한 나라의 제조업은 밸류 체인 중 부가가치가 높은 상위 공정에 얼마나 특화돼 있느냐에 따라 우열이 결정되고 있다. 애플처럼 공장 없이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이 좋은 예다.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목전에 둔 한국이 가치사슬의 바닥부터 최상위까지 모두 담당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산업의 뉴프런티어로 가는 길을 열어야 한다. 한국은 독일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체계적인 산업구조를 자랑하지만, 혁신역량만큼은 뒤져 있다. 단기 고속성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독자적인 혁신보다는 기술 모방에 더 열중했기 때문이다.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 새로운 기술 플랫폼과 제조업의 서비스화, 문화와의 결합을 통해 제조업을 기술적 한계까지 밀고 가야 한다.
세계무역 자유화를 선도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 9번째의 무역 대국인 우리가 세계무역 자유화의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 극복할 수 있다.
수출도 경제성장도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삶의 질이 나아지고 더 많은 경제적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목표는 고령화와 저고용이 필연인 상황에서 창의적인 혁신을 달성할 때만 가능하다. 결국 기업이고 사람이다. 혁신은 기업 안에서 이루어지고 사람이 하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한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혁신적인 중소 수출기업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건강한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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