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김해시에서 수출기업을 운영하는 A 씨는 요즘 환율 뉴스만 보면 속이 타 들어간다. “연내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원-달러 환율이 1200원대를 뚫고 계속 올라갈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에 그는 수출대금으로 받은 달러를 몇 달째 손에 꼭 쥐고 있었다. 하지만 이달 들어 갑자기 미국의 금리인상 지연 전망이 확산되자 환율이 1100원대 초반까지 떨어져 그만 환전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A 씨는 “요즘은 걸핏하면 하루에도 환율이 10원 이상씩 오르내리고 있어서 언제 달러를 내다 팔아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다”며 “미국이 금리를 언제 올리든 그냥 신경 끄고 있는 게 차라리 속 편한 것 같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제의 외풍(外風)이 세지면서 한국 외환시장이 현기증이 날 정도로 출렁거리고 있다. 대외 개방도가 높은 한국에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엔 그 정도가 심한 나머지 금융시장 안팎에서 위기감이 고조되는 한편으로 환율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도 급증하고 있다. IBK기업은행에 따르면 이 은행에서 환율 컨설팅을 받은 기업은 작년 85곳에서 올해는 지금까지만 230곳으로 약 세 배 수준으로 늘어났다.
원-달러 환율은 최근 약 두 달 동안에만 대세 상승과 하락을 세 차례 정도 반복하면서 롤러코스터를 탔다. 일주일 정도 무섭게 환율이 오르다가도 어느 시점을 고비로 다시 원상태로 되돌아가고, 또 이내 가파른 상승곡선을 타는 흐름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2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달 들어 20일까지 평균 환율 변동폭(전일 대비)은 7.3원으로 2011년 10월(8.2원) 이후 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하루 중 환율 최고가와 최저가의 차를 나타내는 일중(日中) 변동폭도 올 3분기(7∼9월) 평균 7.4원으로 유럽 재정위기 당시였던 2011년 4분기(10∼12월) 이후 가장 컸다.
환율이 크게 흔들리는 것은 단연 미국과 중국발(發) 리스크 때문이다. 9월 초까지만 해도 미국의 금리인상이 임박한 것으로 관측돼 환율이 1200원 이상으로 치솟았지만 이달 들어서는 미국의 경기지표가 나빠져 정반대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 변수도 무시할 수 없다. 최근 두어 달 동안 중국의 성장둔화 우려가 커질 때마다 신흥시장의 경제위기론이 증폭되면서 원화 값도 함께 미끄럼을 탔다. 20일에도 중국 경제지표 부진에 대한 경계감 때문에 원-달러 환율이 전날보다 10원 급등(원화가치 하락)한 채 마감됐다.
무역업체들은 널뛰는 환율에 바짝 신경이 예민해진 상황이다. 기업은행 자금운용부 조규봉 과장은 “달러를 조금씩 분할 매도하거나 선물환 계약을 활용해 리스크를 줄이라는 조언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향후 외환시장의 흐름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선성인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 금리인상이 늦춰질 가능성이 커졌고 연말 쇼핑 시즌을 맞아 수출업체의 달러 매도가 늘어나 환율이 추가로 하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에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미국 금리인상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고 외환당국의 개입도 예상되는 만큼 환율은 반등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분간은 변동성이 지속될 것이란 전망도 많다. 정경팔 하나선물 투자전략팀장은 “시장 상황에 따라 1100∼1200원대를 오가는 장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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