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아들을 둔 주부 김모 씨(36)는 얼마 전 국산 애니메이션 장난감 ‘터닝메카드’ 때문에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아들이 지난해 2월 TV 방영을 시작한 국산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이 캐릭터 장난감을 사 달라고 졸라 댔기 때문이다. 터닝메카드는 대형 마트에 입고될 때 부모들이 줄을 서서 사야 했을 정도로 구하기 어려운 인기 장난감이었다. 김 씨는 “인터넷에선 웃돈까지 얹어 판매가의 2, 3배에 팔리고 있다”며 “중고품까지 찾아봤지만 구하기가 어려워 홍콩에서 판다는 이야기를 듣고 친구에게 부탁해 겨우 구했다”고 말했다.
5월 어린이날에는 손목시계 형태의 장난감인 ‘요괴워치’가, 지난해 크리스마스엔 로봇 장난감 ‘파워레인저 다이노포스’가 동이 나 부모들을 애태웠다. 최근 몇 년간 이어진 완구 품절 사태는 ‘키즈 산업 불패 신화’를 보여 준다. 경기 침체로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도 아이에게 쓰는 돈은 아까워하지 않는 부모가 늘면서 키즈산업이 증시의 주목을 받고 있다.
○ 불황 속 소비 이끄는 ‘골드키즈’
키즈산업의 성장 배경에는 저(低)출산과 핵가족화, 맞벌이 부부 증가와 같은 사회 현상이 자리 잡고 있다. 하나뿐인 자녀를 최고로 키우려는 부모가 늘어나면서 ‘골드키즈’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이 펼쳐진 중국에서 ‘소황제(왕자나 공주처럼 애지중지 키우는 외동아이) 신드롬’이 나타난 것과 비슷하다.
키즈산업은 구매자와 이용자가 다른 특성도 있다. 상품 이용자는 아이들이지만 구매를 결정하는 건 부모나 친척들이다. 이 때문에 ‘에잇포켓’(8개의 지갑)이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부모, 조부모, 외조부모 등 6명을 뜻하는 ‘식스포켓’에 이모, 삼촌까지 총 8명이 아이 1명을 위해 지갑을 열 수 있다는 뜻으로 키즈산업의 잠재력이 그만큼 크다는 말이다. 매출에 큰 기여를 하는 VIP 고객처럼 매출을 올려 주는 어린이 고객을 ‘VIB(Very Important Baby)’로 부르며 마케팅을 강화하는 회사들도 있다.
전문가들은 키즈산업의 성장은 부모들의 보상 심리가 작용한 결과로 풀이한다. 맞벌이로 자녀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부모들이 상대적으로 풍요롭지 못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하나뿐인 자녀를 최고로 키우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아동학과 교수는 “저출산 문제가 대두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한 키즈산업은 2010년 이후 급성장했다”며 “현재는 완구, 의류 등 제조업 중심이지만 앞으로 교육, 먹을거리, 금융 등에서 서비스와 결합된 형태로 성장세를 이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 국내 증시를 이끄는 키즈산업의 힘
국내 증시에서도 키즈산업 관련 종목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터닝메카드를 판매하는 완구업체 손오공의 주가는 지난해 말 2900원에서 22일 현재 6540원으로 약 126% 올랐다. 같은 기간 유아용품 업체인 보령메디앙스와 아가방컴퍼니의 주가도 각각 190%, 70% 상승했다. 아동용 콘텐츠 사업을 하는 대원미디어는 44% 올랐고, 분유를 생산하는 남양유업도 29% 올랐다. 아동용 아토피 피부용품을 주력으로 하는 네오팜의 주가도 138% 뛰었다.
전문가들은 키즈산업의 또 다른 성장 동력으로 중국을 지목하고 있다. 중국은 산아제한 정책이 완화되면서 국내와 달리 어린이 인구가 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13년 중국의 유아 및 아동용품 시장 규모는 약 170조 원으로 추정되며, 유아용품 소비 규모는 42조5000억 원으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2018년에는 중국의 유아용품 시장 규모가 미국을 뛰어넘어 세계 최대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에서 한국 유아 제품의 이미지도 좋은 편이다. 보령메디앙스는 2013년 중국 현지 법인을 설립해 사업을 확대해 왔다. 남양유업 등 분유업체의 중국 매출도 꾸준히 늘고 있다. 아가방컴퍼니는 지난해 중국 의류기업 랑시에 인수됐다.
다만 키즈산업 수혜주라고 무턱대고 투자하기보다 중국시장에서의 성공 가능성 등을 꼼꼼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윤정선 현대증권 연구원은 “키즈산업은 저출산 현상 때문에 국내 수요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며 “중국 사업의 실적을 토대로 장기 투자 종목을 골라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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