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포장재 하나라도 줄이자… ‘누드 식품’ 바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4일 03시 00분


분리수거 선진국 독일

“우리는 ‘누드 식품’(nude food)을 팝니다.”

지난해 9월 독일 베를린의 크로이츠베르크 구역에서는 독일 최초로 ‘포장지 없는 슈퍼마켓’이 등장했다. 이 상점에서는 400가지의 식료품과 생활용품을 판다. 그런데 과일, 야채, 곡물뿐 아니라 요구르트, 로션, 샴푸 같은 액체까지 모두 담는 플라스틱 용기나 포장지가 없다. 손님들은 각자 가져온 빈 병이나 장바구니 같은 곳에 물건을 넣어 간다.

이 슈퍼마켓 주인인 밀레나 글림보스키 씨(25·여)는 “독일인들이 1인당 연간 250kg의 쓰레기를 만들어낸다고 한다”며 “치즈나 야채부터 과일까지 모두 플라스틱 포장지로 싸여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플라스틱 포장지 1kg을 만들 때, 6kg의 탄소산화물이 발생한다. 이는 차량을 40km 운행했을 때 배출되는 양과 맞먹는다”며 포장지 없는 상점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 슈퍼마켓이 문을 연 후 독일 전역에서는 포장지를 없애는 슈퍼마켓 체인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독일의 각 지방자치단체들도 폐기물 발생을 원천적으로 방지하는 ‘쓰레기 제로(0)’ 정책을 펴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독일의 ‘환경수도’로 불리는 인구 22만 명의 소도시 프라이부르크다. 이 도시는 원래 가정 쓰레기와 산업 폐기물 가운데 재활용이 가능한 것을 제외한 전체 약 60%에 해당하는 연간 33만 t의 쓰레기를 시 외곽에 매립해왔다. 그 결과 1986년에 쓰레기 매립지가 포화상태가 됐다.

이에 프라이부르크 시 당국은 시민들에게 분리수거를 활성화하고 쓰레기를 자원으로 돌리는 기술을 개발했다. 현재 프라이부르크의 주택 단지에는 재활용 쓰레기통이 3, 4종류가 있다. 시민들은 종이류는 녹색 수거통에, 플라스틱·금속 등의 포장용기는 노란색 봉투에 담아 배출한다. 유리병은 투명, 녹색, 갈색 유리병으로 구분해 유리병 수거함에 배출한다. 또한 음식물류, 낙엽, 화장지 등 퇴비화가 가능한 쓰레기는 갈색 수거통에 담는다. 프라이부르크 시는 현재 전체 쓰레기의 69%를 재활용하고 있다. 덕분에 프라이부르크에서 매립되는 쓰레기 양은 1970년대 5만 t에서 2011년 200t으로 줄었다.

프라이부르크 시는 폐기물을 ‘제2의 자원’으로 만드는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현재 프라이부르크에서 재활용할 수 없는 쓰레기의 1인당 배출량은 연간 90kg이다. 이는 독일 전국 평균인 122kg보다 훨씬 적다. 재활용이 불가능한 쓰레기들은 시 외곽 산업단지 내 폐기물소각장(TREA)에서 태우는데, 이때 발생하는 에너지로 2만8000가구에 전기와 난방을 공급하고 있다.

쓰레기매립지도 에너지 공장으로 진화했다. 매립으로 생긴 50m 높이의 쓰레기 산에서 생산되는 메탄가스는 열병합발전소로 보내져 3300가구에 전기를 공급하고, 780가구에 난방을 공급한다. 또 바이오가스 발효시설과 퇴비생산 시설(BKF)에서는 폐목재, 정원에 깎은 풀 등 미생물 분해성 쓰레기들을 보낸다. 바이오가스로 만들기 위해서다. 이렇게 만든 바이오가스는 시 에너지 소비의 2%에 이른다. 연간 100만 개씩 수집되는 코르크 마개들은 장애인 노동자 단체에 보낸다. 이곳에서는 코르크 마개가 친환경 절연제로 재탄생한다.

또한 독일은 1991년부터 제품 생산회사들에 플라스틱 포장용기를 회수하고 재활용하도록 강제하는 ‘포장폐기물회수에 관한 법령’을 시행해왔다. 이 법이 적용되는 제조업체들은 공동으로 자금을 투자해 ‘듀얼 시스템 도이칠란트(DSD)’라는 비영리 회사를 만들었다. DSD에 포장재 처리 비용을 지불한 회사들은 제품 포장재에 ‘녹색 마크’를 인쇄할 수 있다. DSD가 플라스틱 포장재의 90%를 수거하여 재활용하기 시작한 이후로 쓰레기 소각장에서의 다이옥신 발생도 크게 줄어들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누드#식품#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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