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들 성장동력으로 R&D 집중
2013년 기준 1000대 기업 영업이익 줄었지만 R&D 증가
지난해 4대 기업 사정단 인사 R&D 경력 인원 대거 발탁해 주목
지난해 국내 기업이 운영하는 기업부설연구소가 3만 개를 넘어섰다. 1981년 7월 당시 과학기술처가 ‘기업부설연구소 설립 신고제도’를 도입하고 그해 53개 연구소를 인정한 후 33년 만의 일이다. 국내 기업부설연구소 수는 1991년 1000개 돌파 이후 2004년에 1만 개, 2010년 2만 개, 지난해 5월 3만 개를 돌파하는 등 급증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는 3만2167개가 연구개발(R&D) 활동을 펼치고 있다.
기업부설연구소 3만 개 시대는 기업에서 기술개발이 보편화되고 국가과학기술혁신에서 기업 R&D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2년 기준으로 전국 5인 이상 제조업체 는 13만여 개다. 이 중 약 23%가 일정 연구 인력과 연구시설을 갖춘 기업부설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기업의 기술개발 활동은 지속적으로 확대됐다. 우리나라 전체 R&D 지출에서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제도 도입 당시인 1981년 56% 수준에서 2012년에는 75%로 높아졌다.
한국의 R&D 집약도 OECD 1위
한국 기업의 R&D에 대한 높은 투자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서도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OECD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과학기술산업전망(STI Outlook)’에서도 한국 기업의 R&D 집약도(매출액 대비 R&D 투자액)는 3.4%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았다. OECD가 “한국이 가장 역동적으로 R&D활동을 하고 있는 나라”라고 평가한 셈이다.
R&D 효과는 실질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R&D와 매출액 모두 상위 1000대 기업에 속한 곳은 다른 업체보다 매출액과 영업이익 증가율이 높게 나타났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R&D 투자 1000대 기업에 포함되지 않는 매출액 1000대 기업의 경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16.8% 감소했지만 R&D와 매출 모두 1000대 기업에 속하는 업체는 영업이익이 7.6% 증가했다. 지난해 4분기(10∼12월) 180억 달러(약 19조4000억 원)의 순이익을 낸 애플만 하더라도 2014 회계연도 R&D 지출액이 60억 달러로 2년 전보다 76%나 급증했다.
한국 기업들도 R&D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다. 지난해 말 국내 4대 대기업 사장단 인사에서 R&D 분야의 경험이 풍부한 이들이 대거 발탁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의 추격이 거세지고 일본이 부활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쟁력을 더 높이기 위해서는 R&D를 통한 기술력 제고가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R&D 투자 규모 확대
삼성전자는 3단계로 R&D 조직을 운영 중이다. 1단계는 단기 제품 개발, 2단계는 미래 유망 중장기 기술 개발, 3단계는 미래 성장엔진에 필요한 핵심 기술을 개발하도록 하고 있다. 연구소도 신규로 조성했다. 서울 우면동 R&D센터는 최근 완공했으며 입주를 앞두고 있다. 1만여 명을 수용하는 연면적 33만 m², 6개동 규모로 구성돼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중장기 과제에 대한 R&D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삼성리서치아메리카(SRA)를 중심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이곳에 17개 연구소를 끌어모았다. 최근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스마트워치 ‘기어S2’의 디자인 등도 SRA에서 나온 성과 중 하나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잰걸음을 하고 있다. 2018년까지 친환경차 개발에만 11조 원을 쏟아 붓는다.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수소차 같은 3대 친환경차 부문에서 현대차가 최고 수준으로 뛰어오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기술력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로 여겨지는 스마트자동차에도 2조 원을 투자할 방침이다. R&D 인력도 7345명을 신규 채용하기로 했다.
LG그룹은 올해 R&D에 처음으로 6조 원을 넘어선 6조3000억 원을 투자키로 했다. LG가 서울 강서구 마곡산업단지에 조성하고 있는 ‘LG사이언스파크’는 R&D 의지를 잘 보여준다. 국내 최대 융·복합 연구단지가 될 LG사이언스파크에는 약 2만5000명의 연구인력이 근무하게 된다. 2020년까지 4조 원이 투입되는 LG사이언스파크에는 LG그룹 주요 계열사의 연구시설이 모두 들어선다. 계열사 간 융·복합 R&D로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겠다는 얘기다. LG사이언스파크는 2017년 1단계 준공 후, 2020년에 최종 완공될 예정이다.
2년 연속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SK하이닉스는 R&D 투자비도 꾸준히 늘리고 있다. 2013년 사상 최초로 R&D에만 1조 원 이상을 투입했다. 지난해에도 1조4000억여 원을 연구개발비로 썼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지난해 동기 대비 2000억 원 이상 늘어난 약 8800억 원을 투입했다.
정유화학, 에너지 분야 업체들도 R&D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37년 만에 적자를 낸 SK이노베이션은 기술력을 무기로 위기를 정면 돌파할 방침이다. 대덕연구단지를 중심으로 배터리와 수소에너지 기술에 집중하고 있다. 에쓰오일은 R&D센터를 건립하고 생산기술을 효율화하고 있다. 지난해 5900억 원을 R&D에 투자했던 LG화학은 올해도 전년도 수준 이상의 투자를 지속할 예정이다. 효성은 폴리케톤과 탄소섬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한화는 주력 사업인 태양광 부문 R&D 투자를 더 강화한다.
통신업계는 5세대(5G) 통신에 대한 R&D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SK텔레콤은 5G 시대의 서비스는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체험을 제공하는 기술이 필수라고 보고 이 분야에 R&D를 집중하고 있다. KT는 미래융합전략실과 융합기술원을 중심으로 정보통신기술(ICT) 융합서비스 같은 분야의 기술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황창규 KT 회장은 최근 “ICT를 통해 제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내 1위 인터넷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는 ‘네이버랩스’라는 R&D 조직을 통해 선행기술을 빠르게 서비스에 적용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있다. 현재 가장 주목하는 분야는 인공지능(AI)이다.
이외에도 포스코는 1조 원이 넘는 투자를 통해 확보한 파이넥스 공법을 해외에 수출해 기술료로 수익을 내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했다. CJ는 올 하반기 경기 수원시에 문을 여는 통합 R&D 센터인 ‘CJ 온리원 R&D센터’를 중심으로 R&D를 더 강화할 계획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끼리의 경쟁은 물론이고 글로벌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R&D가 필수”라면서 “경제가 어렵지만 주요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R&D 투자를 늘리고 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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