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조 통장 전쟁’… 갈아탈 준비됐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6일 03시 00분


30일부터 계좌이동제 시행

은행 고객들이 주거래 은행을 손쉽게 바꿀 수 있게 하는 ‘계좌이동제’가 이번 주 중에 본격 시행된다. 25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금융당국과 금융결제원은 29일 ‘계좌이동서비스 활성화를 위한 은행권 협약식’을 열고 자동이체 변경 서비스를 30일부터 개시할 방침이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금융개혁의 주요 사례로 언급하기도 한 계좌이동제는 금융서비스에 대한 소비자의 선택권을 크게 넓혀 준다는 점에서 오래전부터 큰 관심을 끌었다. 고객이 거래 은행을 쉽게 옮길 수 있게 되는 만큼, 은행들은 고객 빼앗기와 지키기 경쟁에 사활을 걸고 있다.

○ 클릭 몇 번으로 자동이체 한꺼번에 변경

계좌이동제는 주거래 은행을 다른 은행으로 옮길 때 기존 계좌에 등록돼 있던 자동이체를 신규 계좌로 한꺼번에 이동시켜 주는 시스템이다. 지금까지 은행 고객이 자동이체 계좌를 바꾸려면 통신·보험·카드사 등에 일일이 연락해 처리해야 했기 때문에 주거래 은행을 바꾸는 게 상당히 번거로웠다. 그러나 30일부터는 금융결제원의 자동이체 통합관리서비스(페이인포) 홈페이지(www.payinfo.or.kr)를 통해 각 자동이체를 다른 은행으로 바로 변경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 페이인포는 자동이체 조회 및 해지 서비스만 제공해 왔다.

금융당국은 이 서비스를 앞으로 순차적으로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내년 2월부터는 온라인뿐 아니라 은행 영업점에 새로 계좌를 만들면서 바로 자동이체 계좌로 등록할 수 있다. 기존 자동이체 계좌 은행을 방문할 필요도 없다. 가령 A은행에서 B은행으로 주거래 계좌를 옮기려고 하는 경우, B은행을 방문해 신규 계좌를 개설하면서 A은행에 연결된 모든 자동이체 거래를 B은행 계좌로 그 자리에서 바꿀 수 있다.

또 내년 6월까지는 통신·보험·카드사 같은 대형 회사뿐 아니라 신문사, 학원 등에 대한 자동이체 계좌도 모두 바꿀 수 있도록 대상 회사를 계속 확대할 계획이다. 다만 일부 아파트 관리비처럼 요금을 청구하는 쪽에서 특정 은행을 자동이체 계좌로 지정한 경우에는 변경이 불가능하다.

아직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30일 온라인을 통한 계좌이동제가 시행되면 금융권에서 상당한 ‘머니 무브(Money Move)’가 일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자동이체 등록이 가능한 수시입출금식 예금 계좌는 3월 말 현재 2억 개 수준이며 이 가운데 잔액이 30만 원 이상인 활동성 계좌는 6000만 개로 추산된다. 또 이들 예금계좌의 잔액은 개인예금 226조 원, 법인예금 193조 원이고 작년 한 해 동안 자동이체로 각종 계좌에서 빠져나간 돈은 총 800조 원에 달했다. 최근 한 여론조사 기관의 조사 결과 국민 3명 중 1명은 “혜택이 있을 경우 거래계좌를 바꾸겠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 금리·수수료 등 혜택 꼼꼼히 비교해야

계좌이동제에 대비해 시중은행들은 신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금융상품을 봇물처럼 쏟아내고 있다. 대체로 예금과 대출, 카드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패키지로 한데 엮어 혜택을 극대화하는 마케팅 전략을 쓰고 있다. 한 은행의 예금계좌에 급여 이체를 하면 패키지로 묶인 대출상품의 금리를 깎아주거나 카드상품의 포인트를 적립해 주는 식이다. 수시입출금식 예금에 파격적인 금리를 보장하거나 본인 외에 주변 사람들에게도 금융 혜택을 주는 이색적인 상품도 눈길을 끌고 있다.

‘집토끼’를 잡기 위한 경쟁도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계좌이동제가 시행되면 다른 은행으로 주거래 계좌를 옮기겠다면서 기존 거래 은행에 금리우대 등 더 많은 혜택을 요구하는 고객이 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금융 소비자들은 평소 거래하던 은행과 다른 은행들이 제시하는 금융 서비스를 꼼꼼히 비교하면서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다. 다만 섣불리 주거래 은행을 바꾸면 기존 은행에서 받았던 대출 금리가 올라가는 등 혜택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은 주의해야 한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계좌이동제가 시행되면 지방·외국계 은행이나 인터넷전문은행들이 고객 기반을 넓히기 위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할 수 있다”며 “이에 반해 대형 은행들은 기존 고객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희수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개인금융팀장은 “은행들이 계좌이동제를 대비해 내놓는 상품들이 차별적이지 않아 주거래 은행을 옮기는 고객들이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고 말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계좌이동제#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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