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와 경영권 분쟁을 벌였던 넥슨이 다음 달 말 책을 한 권 내놓는다. 1994년 김정주 NXC(넥슨의 지주회사) 대표가 세운 넥슨이 국내 1위 게임업체로 성장한 과정을 담은 일종의 ‘기업사(史)’다. 책 제목은 조만간 확정될 예정이다. 출판사는 M사로 정해졌다.
넥슨은 이 책 발간을 위해 3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쳤다. 우선 경제 및 경영 관련 책을 많이 쓴 국내 모 잡지사 기자를 집필자로 섭외했다. 이 기자는 김정주 대표와 수시로 만나며 넥슨 창업 과정 및 성장과 관련된 얘기를 듣고 원고를 썼다. 이 과정에서 김정주 대표와 함께 해외 출장도 가서 투자처 인사들을 만나기도 했다.
넥슨은 이번 작업에 웹툰 작가도 참여시켰다. 기업 인수합병(M&A) 등 넥슨이 20여 년간 경험한 굵직굵직한 사건을 일목요연하게 보여 주기 위해서다. 사건별로 완성된 원고와 웹툰은 김 대표의 꼼꼼한 검토 과정을 통과해야 했던 만큼 수십 차례 수정 과정을 거쳤다.
당초 이 책은 넥슨 창립 20주년이던 지난해 나올 예정이었다. 하지만 엔씨소프트와의 경영권 분쟁을 겪으면서 출판이 1년가량 미뤄졌다. 엔씨소프트에 대한 투자 관련 내용도 담겠다는 집필진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넥슨 관계자는 “이달 15일 엔씨소프트 지분 15.08%(330만6897주)를 전량 매각하면서 경영권 분쟁이 사실상 일단락된 만큼 출판을 더 미룰 이유가 없어졌다”며 “현재 엔씨소프트 관련 내용에 대한 추가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영권 분쟁과 관련한 내용으로는 넥슨과 엔씨소프트 간 기업 문화 차이가 주로 담길 것으로 전해졌다. 넥슨은 김 대표와 임원들이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면서 떠드는 분위기인 반면 엔씨소프트는 김택진 대표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구조라는 게 넥슨 측 설명이다. 실제로 두 회사가 세미나 같은 데서 함께 만날 일이 있으면 엔씨소프트 직원들은 넥슨 직원들의 분위기를 보고 “감히 대표에게 저런 무례한 행동을 할 수 있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김정주 대표가 엔씨소프트와 결별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에 대한 내용도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바로 엔씨소프트가 올해 2월 방준혁 넷마블게임즈 이사회 의장을 사실상 ‘백기사’로 끌어들인 사건이다. 책에는 당시 이 사건으로 허탈해했던 김정주 대표의 심정이 솔직히 담길 것으로 전해졌다.
책에는 김 대표의 서울대 공대 재학 시절 얘기도 들어간다고 한다. 출판업계와 게임업계에서는 이 내용이 경영권 분쟁 못지않게 관심을 끌 것으로 보고 있다. 경영권 분쟁의 당사자인 김 대표가 대학 1년 선배인 김택진 대표를 어떻게 처음 만났는지, 또 어떻게 친해지게 됐는지 등 개인적인 내용을 많이 다룰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게임업계에서는 이 책이 나오면 넥슨의 지분 정리로 사실상 일단락된 경영권 분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넥슨 측 시각에 따라 쓴 책 내용을 놓고 엔씨소프트 측이 불쾌해하면 새로운 ‘감정싸움’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이 책이 김정주, 김택진 대표의 화해를 이끄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김정주 대표가 이 책을 통해 그동안 김택진 대표에게 섭섭했거나 아쉬웠던 일을 솔직하게 토로하면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인간적인 오해’가 풀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내 게임업계에서는 엔씨소프트와 넥슨이 결별한 것을 아쉬워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온라인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부문에서 높은 경쟁력을 갖춘 엔씨소프트와 글로벌 협력 네트워크를 갖춘 넥슨이 서로 힘을 모아 시너지를 냈다면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번에 결별하기는 했지만 두 회사가 지분 투자 없이 프로젝트별로 다시 협력한다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엔씨소프트와 넥슨이 프로젝트별로 다시 손을 잡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불필요한 감정싸움 때문에 그 가능성까지 묻어 두는 것은 두 회사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아름다운 이별’은 아름답게 끝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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