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하기 좋은 나라 순위에서 우리나라가 올해 세계 4위를 차지했습니다. 역대 최고 순위에다 주요 20개국(G20) 중에서 1등입니다.”
27일 세계은행이 ‘2015년 기업환경평가’를 이처럼 발표하자 정부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한국의 기업환경이 좋은 성적을 받은 건 기쁜 일이죠. 하지만 불과 한 달 전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이 26위에 그친 것을 생각하면 다소 의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산업계는 “규제가 여전하다”라고 호소하고 있고, 대통령도 “규제 철폐에 더 노력해 달라”고 각 부처에 수시로 지시를 내리는 상황입니다.
세계은행의 기업환경평가는 창업부터 퇴출까지 생애주기별 기업의 경영환경을 10개 부문으로 나눠 평가합니다. 해당 국가에서 회사를 세워 영업활동을 하고 사업을 정리하는 데 필요한 절차와 비용 등을 산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WEF 등의 순위는 국가경쟁력을 정부, 교육, 금융, 노동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합니다. 평가하는 영역이나 범위가 서로 다르다 보니 결과 역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설문조사 방식과 대상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세계은행은 변호사, 회계사 등 민간 전문가들을 통해 객관적인 수치를 조사합니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1인당 국민소득 10배 규모로 창업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은 얼마인가’라고 묻는 겁니다. 하지만 WEF 등은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금융환경에 점수를 매겨 달라”는 식으로 다소 추상적인 만족도를 조사합니다. 기재부 측은 “기업인들의 추상적인 만족도는 전체 경제상황이 나쁘면 실제보다 더 불만족스럽게 답하는 등 오류가 있을 수 있다”면서 “여러모로 세계은행의 자료가 더 객관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고 정부가 자화자찬에만 그쳐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곳곳에 여전한 규제가 경제 활력을 갉아먹는 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특히 세계은행 평가에서는 다루지 않은 노동과 금융 분야는 우리 사회의 시급한 개혁과제입니다. 제도가 있어도 절차가 복잡하거나 소극적인 공무원들 때문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일도 막아야 합니다. 자랑보다는 ‘세계 네 번째로 기업 하기 좋은 나라’에 걸맞은 위상을 갖추도록 사각지대를 찾아내 고치는 일에 더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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