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 창업자 서성환 평전/ 나는 다시 태어나도 화장품이다]
<4>우리나라 근대 향장사 쓰다
영등포공장 세워 세계화 기초 다져
휴전 1년 후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창업자는 서울로 돌아와 용산구 후암동에 둥지를 틀었다. 외국 군대에 내준 용산 땅을 보며 그는 이 땅에 사업의 주춧돌을 놓겠다고 다짐했다.
후암동 사업이 번창하면서 살림하는 아내의 일상도 고돼졌다. 여공들과 똑같이 제품을 만들고 매끼 식사까지 도맡았다. 제품 만드는 곳에서 살림을 하다 보니 밥에서는 언제나 화장품 냄새가 났다. 모두 ‘향기 나는 밥’을 먹는다며 웃었다. 능동적이고 강했던 어머니, 부지런하고 현명한 아내, 성실하고 순박한 여공들. 그는 가장 가까이 있는 여성들을 통해 여성의 강인함과 부드러움을 배웠고 여성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내면화했다.
사업이 커지면서 제조 능력의 한계를 느낀 그는 지인의 소개로 일본 동경공업고에서 응용화학을 전공한 구용섭 씨를 만났다. 1954년 구 씨의 입사를 계기로 국내 화장품업계 최초로 연구실을 만들었다. 후암동 공장 화장실을 개조해서 만든 초라한 연구실이었지만 당시로서는 선구적인 사건이었다.
연구실을 만든 후, ABC 브랜드를 정비하며 사업은 날개를 단다. ‘ABC 100번 크림’은 ABC포마드에 버금가는 대히트를 기록했다. 부산에서 후암동으로 복귀한 지 2년여 만에 용산구 한강로2가로 회사와 공장을 옮겼다. 외형의 성장에 맞춰 내실도 다졌다. 가마솥 대신 스테인리스 용기를 사용하고 냉동기를 도입했으며, 크림 배합 기계도 새로 설치했다.
그는 독일로 구 씨를 유학 보내 그가 수집해 보내는 선진 정보와 냉철한 제안에 따라 최신설비를 수입했다. 그중 하나가 ‘세계에서 가장 가늘고 부드러우면서도 고운 가루를 제조할 수 있는 제분기’라고 불리는 에어스푼(Air Spun)이다. 이 기계설비 수입은 독일에서 기술자들이 함께 들어오며 당시 큰 화제가 됐다.
서른여섯 해 봄날, 그는 어머니를 떠나보낸다. 어머니는 그에게 일생의 롤모델이자 스승이었다. 어머니를 가슴에 묻은 그는 슬픔을 딛고 ‘ABC분백분’을 시장에 내놓는다. ABC분백분은 출시되자마자 히트 상품이 된다. 이 제품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프랑스 화장품 회사 코티와 기술 제휴를 맺는다. 덕분에 ‘코티분’의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세계 일류 화장품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현대적 시설을 갖춘 대규모 공장을 짓기 위해 영등포 신대방동의 땅을 두 차례에 걸쳐 매입하고 1962년 5월 3일 기공식을 갖는다.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꿈을 위해 밀어붙였다. 공장이 건설되는 동안 자금난이 심해져 임금이 체불되기도 했고 부도설에도 시달렸다. 평소의 신용 덕분에 직원들과 거래처가 도와줬고 위기를 넘겼다.
1962년 11월 20일, 마침내 영등포 공장이 준공됐다. 당시 보기 드문 자동화 시설을 완비한 대규모 공장이었다. 그는 먼바다를 항해할 수 있는 모함을 얻은 것처럼 기뻤다. 이 현대식 공장과 연구소는 훗날 ‘태평양의 제품 개발사는 우리나라 근대 향장사(香粧史)’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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