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통합 삼성물산 출범으로 ‘이재용 체제’의 막을 올린 삼성그룹이 사업 재편 작업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1년 새 한화 및 롯데그룹과의 빅딜을 통해 그룹 내 화학사업부문을 모두 정리한 데 이어 전자 계열사들 간 인수합병 시나리오도 다시 점화하고 있다. 이 같은 삼성그룹 사업구조 재편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이재용식(式)’ 경영방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 화학에서 완전히 손을 떼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하더라도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 삼성정밀화학, 삼성BP화학, 삼성석유화학, 제일모직 등 케미칼 관련 계열사만 6개를 거느리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삼성석유화학을 삼성종합화학에 합병시킨 데 이어 그해 11월 삼성종합화학과 삼성토탈을 한화에 넘기는 결정을 내렸다. 이번에 삼성정밀화학과 삼성BP화학은 물론이고 삼성SDI 케미칼 사업부문(지난해 7월 구 제일모직으로부터 인수)까지 롯데에 매각하면서 그룹 내 화학사업은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됐다.
삼성그룹이 화학사업을 모두 정리할 것이라는 전망은 8월 삼성SDI와 삼성정밀화학 간 ‘사업 스와핑’ 때부터 나왔다. 삼성SDI는 삼성정밀화학으로부터 전지소재 연구개발(R&D) 설비, 특허권, 인력 등과 2차전지용 양극소재 제조업체인 에스티엠 지분 58.0% 전량을 사들였다. 삼성정밀화학은 대신 삼성SDI로부터 초산(나일론 및 페트병 원료) 생산업체인 삼성BP화학 지분(29.2%)을 인수해 이 회사 지분을 19.8%에서 49.0%까지 높였다.
한화그룹에 매각하고 남은 화학사업 역량을 삼성정밀화학에 집결시킨 것이다. 삼성정밀화학은 이와 함께 경기 수원시 전자소재연구단지 내 연구동 등을 삼성전자에 판 뒤 최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글래스타워로 이전해 물리적으로도 삼성그룹과 결별했다.
○ 그룹감사 끝난 삼성SDI 구조조정 시작
지난해 5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입원한 뒤 그룹의 실질적 리더가 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그룹 역량을 전자와 금융에 집중해 왔다. 삼성그룹이 화학과 중공업 등 비주력 사업부문에 대한 몸집 줄이기에 적극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을 추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경우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작업이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지만 사업적 측면에서는 건설, 패션, 리조트 등 비주력사업 부문을 한곳에 합친다는 의미도 있었다.
재계의 관심은 삼성그룹이 다음에 손을 댈 계열사가 어느 곳인지에 쏠리고 있다. 특히 8월부터 진행돼 온 삼성SDI 전자소재부문에 대한 그룹 감사가 최근 종료돼 어떤 후속작업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우선 삼성SDI는 그룹감사 결과에 따라 대폭적인 구조조정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삼성 내부에서는 삼성전자가 아예 삼성SDI를 한 사업부로 흡수 합병하는 시나리오도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와 삼성SDS 간 합병설도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29일 기업설명회(IR)에서 “삼성SDS와의 합병은 현재로서는 계획 없다”고 재차 부인했다.
삼성그룹 고위관계자는 “사업 재편 작업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며 “급변하는 글로벌 경영환경에 맞춰 ‘잘할 수 있는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게 전체적인 방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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