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 3억대 전세아파트, 전세난민 몰린다는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3일 03시 00분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주공5단지-진주-장미-미성, 주변시세의 ‘반값’
전세가율 40% 미만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이 아파트 전용면적 82m²형은 주변 시세의 절반인 4억원 정도에 전세가 거래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93@donga.com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이 아파트 전용면적 82m²형은 주변 시세의 절반인 4억원 정도에 전세가 거래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93@donga.com
회사원 윤모 씨(37)는 얼마 전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서 3억7000만 원짜리 전용 82m² 전세 아파트를 구했다. 1978년 입주해 재건축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낡은 아파트이지만 전세금이 주변 시세의 ‘반값’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윤 씨는 “서울 강남지역 아파트인데도 전에 살던 경기 용인시 아파트보다도 전세금이 싸 주저 없이 계약했다”며 “직장이 있는 삼성동(서울 강남구)이 차로 15분 거리인 데다 잠실동 학원가가 가까워 아이 기르기에도 좋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에 지어진 서울 잠실 재건축 아파트들이 치솟는 전세금에 짓눌린 수도권 ‘전세난민’의 탈출구로 떠오르고 있다. 이 지역 노후 아파트들이 서울 강남권의 마지막 3억 원대 전세 아파트로 알려지면서 전세 거래가 활발하다.

2일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달 말 잠실동 잠실주공5단지 전용 82m²형의 전세 시세는 4억1000만 원이다. 근처의 엘스아파트 전용 84m²형 전세금 시세(8억2500만 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3억5000만∼4억 원짜리 전세 매물도 흔하다. 반면 이 아파트의 매매가는 12억2000만 원 안팎으로 엘스(10억2500만 원)보다 오히려 2억 원 정도 높다.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금 비율)이 33.6%에 불과한 셈이다.

잠실동과 인접한 송파구 신천동 아파트들의 전세금은 더욱 싸다. 장미·진주·미성 등의 중형 아파트 전세금 시세는 3억5000만∼4억 원으로 서울 한강이남 자치구들의 9월 평균 전세금(4억1667만 원)보다 낮다.

잠실동과 신천동은 지하철 2·8호선 잠실역을 끼고 있고 제2롯데월드 등 개발 호재가 많아 서울의 ‘신흥 부촌’으로 떠오르는 곳이다. 그런데도 잠실주공5단지와 진주·미성·크로바 아파트 등의 전세금이 매매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은 단지가 입주한 지 30년이 넘어 시설이 낡았기 때문이다. 이 단지들은 2000년대 초·중반부터 재건축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주변 지역에서는 집주인들이 전세 매물을 걷어 들여 반(半)전세나 월세로 돌리고 있지만 이 지역은 전세 매물이 비교적 많은 편이다. 융자를 끼고 투자 목적으로 재건축 아파트를 산 집주인들이 월세보다 대출금을 갚기 유리한 전세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날 현재 잠실주공5단지(총 3930채)에는 총 10여 건의 전세 매물이 나와 있다. 근처 엘스(5678채), 리센츠(5563채), 트리지움아파트(3696채)에서는 각각 2, 3건의 전세 매물만 확인됐다.

전세 거래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8월 잠실주공5단지에서는 지난해 같은 달(44건)보다 4건 많은 48건의 전세가 거래됐다. 장미1차아파트 역시 8월 전세 계약이 24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15건)보다 60% 늘었다. 같은 기간 송파구 전체 아파트의 전세 거래량은 907건에서 685건으로 줄었다. 장미아파트 근처의 태양파크공인중개사무소 김회주 대표는 “전세 계약자의 대부분은 서울에 직장이 있는 20, 30대 신혼부부”라며 “가을 이사철에 앞서 저렴한 전세를 선점하려는 수요자들이 7, 8월부터 몰렸다”고 전했다. 잠실주공5단지 안현정공인중개사무소 안현정 대표도 “개포동(강남구), 고덕동(서울 강동구) 등지의 재건축 단지 이주민들이 시공사가 지급한 기본 이주비로 감당할 수 있는 싼 전세를 찾아 이곳에 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주택이 낡아서 생기는 불편만 감수할 수 있다면 재건축 아파트가 전세난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자녀 교육환경이나 통근 여건 등을 중시하는 수요자라면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전세 입주를 고려할 만하다”며 “매매가와 전세금 차가 커서 ‘깡통전세’ 위험도 적다”고 말했다.

다만 난방, 수도, 엘리베이터 등의 시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계약 전에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자칫하면 관리비와 수리비가 일반 아파트의 월세만큼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잠실주공5단지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거실 난방이 들어오지 않아 겨울에 매달 50만 원 이상의 난방비를 쓰는 집들도 있다”고 말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아파트 재건축에서는 재개발 사업과 달리 세입자 이주비가 나오지 않는다”며 “철거가 이뤄지는 시점을 확인하고 계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천호성 기자 thousand@donga.com
#삼실#전세아파트#전세난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1

추천 많은 댓글

  • 2015-11-03 07:01:51

    그 돈이면 강북에서 잘 지은 신축 빌라를 사고도 남는다. 왜 전세를 사나?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